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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의 도덕폐기론 하이퍼 칼빈주의 비판은 정당했다
김홍만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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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21: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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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칼빈주의에서의 성화 교리

하이퍼 칼빈주의가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신자의 죄에 대한 태도가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영원 칭의의 강조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성화가 있을 곳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칼빈은 칭의 교리를 설명하면서부터 믿음이 행함과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 안에 칭의와 성화를 담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그 둘은 구별된다고 하였다.87 

칼빈에게 있어서 칭의와 성화의 관계는 구원 교리의 전체의 원리이며, 모든 신앙의 근본이었다. 그리고 칼빈은 신자는 삶의 거룩함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칭의 되었다고 하였다.88 즉 칭의의 목적은 성화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칭의가 있다면 성화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론에서 성령의 성화의 역사가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 교회의 참된 회원이라고 말하였다.8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성화가 구원의 요소인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그들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을 창조함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말씀과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그리고 직접 성화되며, 온몸을 주관하는 죄의 권세가 파괴되고, 그리고 그 죄의 몸에서 나오는 정욕들이 점차 약하여 줄어지고, 그들은 점차 구원하는 은혜 안에서 활기를 되찾아 강건하게 되어, 참된 거룩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거룩한 생활이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90

칼빈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칼빈주의의 구원론에서 성화가 중요하다. 따라서 웨슬리가 본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진 칼빈주의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하이퍼 칼빈주의 이었던 것이다.
 

6. 칼빈주의에서의 복음 전도

하이퍼 칼빈주의의 가장 문제점은 복음전도 혹은 복음초청의 무용성을 말한 것이다. 하이퍼 칼빈주의에서 복음전도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진정 칼빈은 이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칼빈은 그 당시 재세례파들이 말씀의 사역을 거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였는데, 이 반박은 하이퍼 칼빈주의에 대한 반박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

“모든 열등한 수단을 거절하고, 날개도 없이 구름위로 오르려는 환상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분히 가르치시지 않느냐? 그가 믿음을 주시지 않느냐? 사람들의 손에 성령이 계시지 않느냐? 우리에게 설교를 할 필요가 있느냐?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많이 읽어야 하느냐? 혀를 우리 귀에다 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충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축복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신다 ...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믿음은 통상적으로 들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 의하지 않고서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91

계속해서 칼빈은 선택과 유기 교리에 대한 열 두번째 설교에서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잘못들이 용서되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흘린 피가 참으로 정결하게 하는 것으로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에, 비록 그 말씀이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고 우리를 자기에게로 부르신다.”92

기독교 강요에서도 칼빈은 하나님의 초청은 우주적인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93 주님의 대 명령에 대한 주석에서도 칼빈은 주께서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곳에서 구원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 멀리까지 가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94 따라서 복음 전도의 무용성을 말하는 것은 하이퍼 칼빈주의이지, 칼빈주의가 아니다.
 

Ⅴ. 나가는 말

웨슬리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칼빈주의에 대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였다. 칼빈을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했으며, 휫필드와 중생에 대한 부분에 동의하였고, 심지어는 1748년 8월에 칼빈주의자들인 청교도들의 작품들을 자신이 편집하여 A Christian Library를 펴냈으며, 선행적 은혜의 이론은 청교도의 회심 신학과 거의 유사하다.95

그러한 웨슬리가 칼빈주의를 실랄하게 비판한 것은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기 때문이다.96 웨슬리는 성화와 전도를 무시하는 하이퍼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여서 칼빈주의를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웨슬리가 도덕률폐기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가르침에 대해 비판하였던 것은 마땅한 것이다. 잘못된 신학이 교회의 경건을 무너트리고, 거룩과 성결의 삶을 추구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망가트리는 가르침이라면 반드시 비판하고 공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웨슬리가 하이퍼 칼빈주의를 칼빈주의로 오해하였던 현상은 물론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선택과 예정론과 성도의 견인 교리를 남용하여서 성화를 무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웨슬리가 이해하였던 것처럼 그것을 칼빈주의로 보는 것이다.97 즉, 칼빈주의가 과도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성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것은 웨슬리가 개혁하려했던 도덕률폐기론 성격을 가진 하이퍼 칼빈주의가 오늘날 교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이퍼 칼빈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신학자들이 칼빈주의와 하이퍼 칼빈주의가 어떻게 다른 가를 분명히 가르치고, 잘못된 신학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경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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