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도단은 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면, 한국교회 기성세대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친 사람은 조용기 목사이다.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끌고 있는 조용기 목사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의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교회 안에는 셀 교회 열풍이 불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몸에는 각 지체가 있고 그 지체 안에는 최소한의 살아 숨쉬는 단위인 셀(세포)이 있다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연구된 셀 교회 이론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셀 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랄프 네이버 박사도 자신의 연구 작업을 ‘제2의 종교개혁’이라 부를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전통방식에 젖어든 한국교회 목사들은 앞 다퉈 셀 목회를 개 교회에 접목시키고자 하였다. 셀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랄프 네이버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셀 목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구역을 연구한데서부터 시작하였다고 할 정도로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세계적으로 연구의 대상이 된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구역 모임은 미국으로 수출되고, 수출된 이론은 조금 더 세련미를 곁들여서 다시 한국으로 수입된 형국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셀 교회의 바람이 붙었던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음으로 양으로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조용기 목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의 책들을 통해서 알아보자. 먼저 『그의 설교는 나의 인생』이란 책을 통해서 그의 설교관을 살펴보자.

“목회 초기에 내 설교는 대부분 기독교의 윤리와 도덕, 천국과 지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영적 축복과 은혜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과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이러한 것들에 대해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고 병들고 생활에 찌들려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은 물론이고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은 하등의 흥미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이야기는 배부르고 속 편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장식품이며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당장 허기를 채울 따뜻한 밥 한 공기, 약 한 봉지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에겐 복음이었습니다 ... (중략)

이러한 가운데 내게 서서히 설교 철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천국의 복음과 더불어 살아 계신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즉, 삶의 현장에서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임을 증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설교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연관성이 있어야 관심을 갖고 교회에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의 설교의 목표가 현세 문제의 해결에 초점이 맞춰지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에게는 회중들에게 죄를 지적하거나, 말씀에 입각한 회개를 촉구하거나 하나님을 떠난 삶을 지적하는 선지자들의 사자후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나의 설교는 전적으로 삶의 문제의 해결을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영적,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천국 백성이 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까에 중점을 두고 설교를 작성합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삶에 지쳐서 교회에 나온 성도들이 영적으로 복을 받고 건강으로 복을 받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복을 받아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삼중구원의 축복을 늘 전합니다. 그것이 제 메시지의 근본입니다.”(조용기 목사)

삼중구원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들이 영적으로 잘 되는 것의 최종점은 범사가 잘되는 것이다. 회중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거듭나야 하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져 들이고 성령의 은혜를 받는 이유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그것이 하나님께서 범사에 축복하시며 강건하게 해주시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고 가르친다.

“나는 성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정죄하는 설교를 하면 절망입니다. 그들이 지진 삶을 딛고 다시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소망이 넘치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조용기 목사)

세계적인 기복설교자 조용기 목사가 자신과 가족의 재정비리에 대해 겸손하게 사죄하는 모습

현세의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권력과 건강과 부를 얻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다.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들은 세상이 월등히 앞서 있다. 성경을 연구하여 부의 복을 얻는 것보다는 당장 돈 버는 법을 배우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성경은 세상이 이야기하는 부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진리는 아무리 불쾌해도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목사의 사역은 회중을 즐겁게 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회중들에게 성경의 말씀 가운데 소망적인 내용들만을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므로 임의대로 희망의 메시지나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직무유기이다.

“절망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가난한 자, 아픈 자가 부자 되고 치료되라는 것이 나쁜가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나쁜 것이 아니라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설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성경본문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설명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에는 장엄함이 있어야 한다. 잠시 시장에서 유통되는 인기 강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설교함에 있어서 세속의 인기 있는 주제들을 접목시키려는 유혹은 설교자들에게 늘 따라 다닌다.

한때 즐거움을 줄 수 있어도 이런 류의 설교에 회중들이 오래 노출되면 필경 영적 영양실조에 걸리게 된다. 세속의 인기 있는 주제를 설교에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듣는 교인들의 세속적, 현세적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 하는 설교자의 의욕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청중들의 문제는 이렇게 평면적이고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보고 경험하면서 해결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회에는 고통 받은 사람들이 언제나 많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심리적인 어려움, 육체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설교자들이 이들을 보며 ‘현세적 고통은 외면한 채 전상의 소리나 외치는 것’은 무의미 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그런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해 주십시오”

자신들의 현세의 삶에 지쳐 있는 성도들이 설교자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 사회는 효율성의 시대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효과적인 것을 찾게 된다. 현대 설교자들의 효율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때문에 신학이 설교자의 몸을 거치면 심리학과 경제학과 행복학이 나온다.

그러나 설교자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거룩하게 나타내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설교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연구하고 설교자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하여 그의 설교에서의 거룩한 하나님을 대언하는 것이야 말로 설교자의 최고의 직무수행이다.

J. I Packer는 1948-1949년에 주일 저녁마다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과 놀라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로이드 존스가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했다. 설교자는 현세에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자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이지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로마서 10:14-15)

그 좋은 소식은 무엇인가? 로마서 10장 14절의 ‘그런즉’은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였는데 그들이 전파하는 좋은 소식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아름답고 좋은 소식이며 복음이란 말인가? 1절을 살펴보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롬 10:1)

율법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전파해야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고 말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제 14절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복음을 알았으니 ‘그런즉’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식은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분은 오래 참으시지만 끝없이 참으시지는 않으신다. 지금 그분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값없이 사면해 주실 것이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무리들을 기쁨으로 그 도에 따르게 하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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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