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서철원 박사의 (인간론)의 pp.168-171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정통 개혁신학을 배우고, 전혀 이질감 없이 한국인의 신앙 정서에 맞게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개혁신학의 진수를 맛보기 원하는 독자들이 반드시 구입하여 일독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정이철 목사) 언약신학은 개혁신학에만 있다언약사상은 개혁신학에만 있다. 그러나 언약의 설정과 전개가 개혁신학에서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비추어서 언약체결의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언약을 구원 혹은 영생 얻음을 위해서 체결했다는 면에서만 보았다. 영생을 위해서 언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처음 창조가 불완전하여 보충이 필요
성경을 믿는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아는 것은 종종 어려운 문제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 자체나 심지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조차도 너무 모호하고, 심지어 오도되기도 한다. ‘정통주의’는 수염 난 사제들을 연상시킨다. ‘보수주의’는 종교적인 확신보다 정치적인 입장 혹은 괴팍한 고집불통(a temperamental stodginess)처럼 들린다. ‘근본주의자’라는 용어는 과거에만 해도 어떤 매우 위대한 기독교 학자들에게 적용되던 것이, 오늘날에는 반지성주의를 연상시키는 비난이 되어 버렸다.나는 성경을 믿는 모든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을 설명하는 최고의 용어가 ‘복음주의’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단어 또한 역사를 통해 다소 모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고난의 삶: 낮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 의의 성취고난의 삶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이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성육신 자체와 고난의 삶과 십자가가의 죽음과 지옥강하로 이루어진다. 이 비하 상태에서 한 그의 사역이 인류의 구원을 이루었다. 고난의 삶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계속되었다. 출생도 보통 인간이 당할 수 없는 굴욕적인 출생이었다.또 그의 모든 삶은 죄악과 영적 세력들의 공격과 백성들의 배척과 지도자들의 미워함과 시기에 의해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되 연속적으로 당하였다.그러나 고난의 삶은 고난으로 이어진 것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고난의 삶은 의의 성취에 이르게 되었다. 곧 그의 의의 성취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피 흘려
질문>목사님이 로이드존스와 에드워즈의 성령신학에 대해서 비판하였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성령신학을 오순절 신학과 같다고 했고, 로이드존스가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사람처럼 성령을 받았다고 한 부분을 특히 많이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부흥의 사람인 조나단 에드워즈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했습니다.그런데 서철원 박사님의 최근 교의신학을 보니 내용이 똑 같던데요. 서철원 박사님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되었다고 합니다. 답변>서 박사님은 오순절 운동가들과 신사도 운동가들이 말하는 관점의 성령세례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받았다고 하실 분이 결코 아닙니다. 서철원 박사
1. 사도 바울(the Apostle Paul)은 누구인가사도 바울(Paul)은 과연 누구였을까? 사도 바울만큼 기독교 역사에서 극적이고 독특하고 중요한 인물이 있을까?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외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출신과 가문은? 그리고 회심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후 돌연 신앙의 변곡점을 맞았던 것일까?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번쯤 그에 대한 궁금증이 없었던 사람이 있을까?바울은 길리기아 다소(행 9:11; 21:39; 22:3)에서 로마 시민이었던 부모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경 속에서 그의 가족에 대해 더 이상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제롬(jerome)은 한 구전을
제 24차 창조론오픈포럼에 초대합니다. 장소: 노량진 신성교회(정민 목사 시무)서일시: 2019. 2.23일(토)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지난 2007년 ‘창조론은 자연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신학과 철학, 과학사, 인문사회학과 문학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는 대표적인 학제 간 교류가 필요한 융합적 주제’라는 취지로 시작된 창조론 전문가들의 모임인 창조론오픈포럼 제24차 모임이 2019년 2월 23일 오전 9시 30분부터 노량진에 있는 신성교회(동작구 만양로 35, 정민 목사 시무)에서 개최된다.이번 포럼에는 주제들을 함께 나누게 된다. '찰스 핫지의 창조론'(박찬호 교수)'기원논쟁과 진화의 의미적 다양성'(양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지금까지 이 세상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많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율리어스 카이사르, 징기스칸 ... 그런데 탁월한 역사학자들은 전쟁을 지휘하지도 않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단 한명도 죽여보지도 않았고, 많은 재물과 재산을 이룩하지도 않았던 루터라는 사람이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이구동성으로 평가합니다. 루터가 제기한 이슈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여러 나라들의 임금으로부터 시장의 상인들과 농촌의 촌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루터가 제시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칼 한 자루도 손에 들
질문>정이철 목사님, 유튜브의 인기 스님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행위구원을 주장합니다. 마태복음 25장 등을 예로 들면서, 불쌍한 이웃을 돌보았으니 천국에 가고 모른 척하였으니 지옥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나 불교나 상관없이 착한 일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착한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이처럼 성경의 몇 구절을 가지고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그런데 불교신자들은 물론이고 자칭 기독교인들도 “목사님 설교보다 훨씬 낫다”는 댓글을 달고 있어서 당혹스럽고 비통합니다. 자칭 기독교인들이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곳에서 행위구원을 가르치셨는데 이후 바울이 믿음
오순절 교회들이 시작하여 온 땅에 전파한 방언기도 은사에 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살펴보자. 방언으로 기도하는 은사는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여전히 정당성이 없다. 천주교인이 아무리 많아진다고 해도 그곳이 하나님을 성경대로 믿는 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골백번 더 많아져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경대로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천지가 진동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져도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당시 이방 나라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씀하시는 은사였다. 현대의 방언기도는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비밀스럽게 기도한다는 은사라고 한다. 방언기도하는 은사를 받으신 분들은 2,000년 교회사에서 방언기도가 은사로 인정받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1. 다윗의 시편 8편다윗은 시편 8편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상에 나타난 그의 위엄과 아름다움과 영광을 노래한다. 심지어 다윗은 창조주께서 어린 아이와 젖먹이를 통해서도 찬양하게 하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수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양한 아이들을 분하게 여기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이 구절(시 8:3)을 인용하면서 책망하고 있다(마 21:16). 다윗은 주를 찬양하는 아이들을 보고 주의 원수들이 부끄러워 잠잠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믿음이 단순히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한 신학적 지식에만 있는 게 아님을 시편 8편은 보여준다. 2. 창조 세상을 찬양한 다윗다윗의 찬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윗은 주님이 만드신 하늘과 그곳에 펼쳐진 달과 별들을 신기한 눈으로
우리가 이 땅의 나그네로서 경험하고 소속하는 모든 지역교회들이 항상 완전하고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좀 말하기 곤란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에는 거짓된 신자, 구원과 무관한 사람들이 끼어있을 수 있습니다. 마귀의 가라지도 끼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마귀의 가라지가 목회자가 되고,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어떤 지역의 교회의 구성원 중에 구원을 얻는 참 하나님의 백성은 불과 1% 불과하고 나머지 99%가 구원과 무관한 거짓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지역교회는 완전히 타락하여 구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가 극에 달했을 때, 엘리야가 하나님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나만 홀로 남아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서철원 박사가 일부 이단연구가들과 진용식 목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양태론 이단논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피력하였다. 서철원 박사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여호와라고 표현한 진용식 목사의 진술이 옳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구약의 신현은 다 아들 하나님의 현현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여호와로 지목되었다. 아담의 타락시 아담에게 오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시고 아브라함의 장막에 찾아오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시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시다.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에게 다 여호와 호칭을 적용하였다.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신데 여호와 하나님으로 지목되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으로 그가 여호와이시
신사참배 80년 회개 및 3·1 운동 100주년을 위한 ‘한국교회 일천만 기도대성회’가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행사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협의체들이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연합, 한국교회총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제외한 한국교회 연합기관들이 동참하여 80년 전의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했다. 공동회장단이 회개를 선언했다.대표 대회장 정서영 목사(세기총 대표회장)는 “한국교회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저항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으나 결국 무릎을 꿇는 과오를 범했고, 그로 인한 민족적 고난은 조국 광복 이후 참혹한 민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헹사
질문>정이철 목사님, 영혼구원을 향한 열정과 귀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첫 질문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계속 새사람이 되어가야"라는 기사의 표현이 김 교수님의 글이나 발언의 어떤 부분에 근거해서 하시는 말씀이신지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히브리서 6:4-6절에 대한 내용입니다."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회개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갈 수 있다는 것인데, 제 생각엔 구원을 잃는다는 것인데 ..
21세기 포스트모던 상황 가운데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기독인들로부터 세찬 도전을 받고 있다. 이들 반기독지성을 대표하는 중심인물 가운데 그 영향력에 관한한 3총사를 꼽으라면 아마도 평생 신을 부정하던 유명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에릭 히친스(Christopher Eric Hitchens, 1949-2011)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30년 이상 캠브리지 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세 인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모두 영국계이며 반기독인인 동시에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지성인이라는 점이다. 히친스는 무신론에 정면 도전한 책인 「
2. 역사적 기독교와 개혁신학학자들 가운데서 가끔 발견되는 우상성은 자신의 신념을 유일한 성경적 견해로 여기며 절대화하는 태도이다. 타성적으로 지금까지 다루어 오던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같은 형식 속에 집어넣어 판단하면서 오히려 자기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을 자연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말하면서도 자주 “객관적으로 말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것과 다른 신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역사적 기독교 신자들은 기존의 견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주저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 상태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신학도의 임무는 쟁점들을 명확히 밝히고 공동유산인 신앙고백을 비평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질문>정이철 님! 쓰신 글을 보고 몇 가지 의문이 들어 글을 남깁니다. 우선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엡 5:18 의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그리고 권 목사님의 비상충만에 대해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신자에게 한 번에 영구히 오신 성령이 인격적으로 신자의 삶을 다스린다는 성경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파괴’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이것이 권 목사님의 비상충만에 대한 비판이라면 정이철님은 권 목사님의 ‘비상충만’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권 목사님이 말씀하신 비상충만은 ‘중생에 이르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삶 가운데
마귀와 귀신들의 기원창조 연대 논쟁을 다루는 데 있어 세속 과학의 연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면 과학적 충돌이나 신앙적인 문제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세속적 연구는 늘 유동적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늘 유동적인 과학자들의 그 연구 성과들을 차분히 기다리면서 성경과 어떻게 조화되는지 살펴보면 된다. 늘 가변적인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끊임없이 해석이 변하고 수정되기 마련이다.그 과정에서 바른 성과들을 취하고 해석하면 된다. 문제는 세속 과학과 충돌하는 젊은 창조 연대를 주장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창조 연대 논쟁의 딜레마는 창조의 젊은 연대를 고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문제는 신학적으로 바른 성경 해석인지 검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근자에 우리 합동총회 일부 인사들이 알미니안 계통의 신학적 견해와 부흥운동을 정당한 신학으로 제시하고 주장했다고 들린다. 이런 경향에 대해 반론이 제기되었던 같다. 이런 신학적 견해와 운동은 개혁신학에 어긋난다고 인터넷사이트에서 제시하였던 것 같다. (본 투고자는 아직 그 인터넷사이트에 올린 글들을 읽지 못해서 시비사항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이렇게 반론이 제기되자 시비 받은 인사들이 세를 규합하여 그 반론자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교단에서 출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들린다. 이런 해결방식은 시비 받은 신학 문제를 반성하고 고치려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사료된다.또 이런 방식은 신학적 시비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어서 건전한 방식이 아니라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영국국교회 사제 존 셀비 스퐁은 다원주의 시대를 맞아 급속하게 변모하는 21세기의 기독교를 ‘새로운 기독교’(A New Christianity)라 부른다. 신약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이를 ‘새로 등장하는 기독교’(A Newly Emerging Christianity)라고 일컫는다. 어떤 사람들은 ‘신세계 기독교’(A New World Christianity)라고 하기도 한다.한국교계는 이 ‘새로운 기독교’를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일컬어 왔다.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신학 유형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여 그것이 역사적 기독교(Historic Christianity)와 구분되는 ‘새로운 종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 유서 깊은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는 하나님, 성자, 성령, 십자가,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