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9장에서 자신이 장차 가게 될 영원한 내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저는 종교개혁자의 진정한 힘이 자기 목숨보다 영원과 내세를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신앙에서 나왔음을 느낍니다. 신학 지식이 칼빈의 최고의 힘이 아니었습니다."내세의 삶에 비하면 현재의 삶은 무시해도 무방할 뿐 아니라, 완전히 멸시해야 한다. 하늘이 우리의 고향이라면, 땅은 타향임이 틀림없지 않는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곧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세상은 무덤이 아니고 무엇이냐?육신에서 잠시 놓이는 것이 곧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이라면, 육신은 감옥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면,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 것은 불행이 아닌가? 세상을 작별할 때까지
칼빈의 를 보니, 칼빈의 힘은 성경의 말씀이었습니다. 칼빈을 보니, 진정한 힘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의 존재와 인격을 드러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 "성령의 영감"을 받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과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저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성령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으로 그 사람에게 이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말하고 기록하였으나, 그의 마음에 와 있는 내용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성경이 기록될 때에 성령께서 그 특별한 사람들에게 그 같은 '감동'과 '영감
칼빈은 그냥 실력있는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칼빈은 속사람이 잘 갖추어진 진정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설명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행위의 교만을 버릴 것을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우리가 겸손하게 되는 방법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부족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가 아직 무엇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우리의 의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함께 가진 사람들은 파멸적인 위선을 가르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3.12.6)칼빈의 인격과 속 마음이 묻어 나오는 이런 내용들이 그의 에 자주 나옵니다. 칼빈은
3권 20장에서 칼빈의 방언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을 접했습니다. 이전에 방언이 언급되는 딱 한 문장을 보았는데, 오늘은 조금 깁니다. 총 4권 20장으로 구성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대작에서 방언에 대한 언급이 이 정도로 작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독교의 방언 은사에 대한 이해에 논란이 종교개혁 당시에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기독교가 출범되는 되던 초기에 잠시 교회에 존재하였으나, 곧 바로 사라졌으므로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다.고린도전서 12장의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은사의 목록에는 방언과 방언 통변의 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약 2년 후에 기록된 로마서 12장의 은사 이야기 속에는 예언은 있어도 방언이 없습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예언의 은사와
오늘도 우리 동네 맥도날드에 왔습니다. 제가 날마다 이곳에 온다고 하니, 햄버거 많이 먹고 미국형 성인병 걸릴까 걱정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햄버거 일년에 세개도 안 먹습니다.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할 때만 부득이 길가에서 한 두번 먹는데, 그때는 버거킹으로만 갑니다. 버거킹에 가서 1번 셋트를 치즈와 피클 빼고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맥도날드에서는 커피 라테를 저지방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마십니다. 맥도날드에만 와서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의 의지와 테아블이 저에게 맞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맥도날드 매장의 사장들은 매장의 겉 모양은 통일되게 꾸미지만, 내부는자기 개성대로 합니다. 도시마다 맥도날드 매장들이 도처에 있어도, 제 몸에 맞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눈을
1. 아담의 죄와 관련을 부인하는 견해아담의 죄와 인류의 죄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신학들이 등장했다. 펠라기우스주의, 소시니안, 반펠라기우스주의, 신(新)학파(New School, New Heaven theology) 이론, 칼 바르트의 위기신학 등이 아담의 죄와 인류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벌코프: 1994, 458-459). 그러나 아담의 실재성(historical Adam)에 대해서 부인하면 원죄에 대한 논의에 대한 근원 문제가 상실된다.박형룡 박사는 신학파가 바빙크의 사상과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1757년에 휘트비에 대항하여 자신의 유명한 논문, 『원죄 변호』를 저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이미 간접적인 죄의 전가를 신봉했고, 홉킨스, J. 에드워
최근 청교도 신앙 중심으로 목회하는 교회들 사이에서 '회심준비론'이라는 가르침이 크게 성행하고 있다.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미시간에 있는 청교도 신학교의 학장 조엘 비키 교수가 저술한 책이 한국의 청교도 운동에 헌신하는 분들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마르투스, 2018)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한국 교회에 널리 홍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의 유사한 사례로는 서문강 목사가 존 에인젤 제임스의 책을 번역하여「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청교도신앙사, 2012)라는 제목의 책으로 보급한 것이다.은 앞으로 회중-청교도에서 발전된 이런 구원준비론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하여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하는 정통 종교개혁 신학과 어떤 면에서 유사하고 다른지를 독자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필자는 신호섭 교수(고려신학교)가 회중-청교도 신학 노선에 서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소장파 학자라고 여긴다.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강력하게 전파하고, 코르넬리스 프롱크, 조엘 비키 등의 회중-청교도 노선의 학자들과 신학 코드가 맞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다.필자는 회중-청교도의 신학이 칼빈에게 기초를 두어야 하는 정통 개혁신학에서 벗어나는 점들이 많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신호섭 교수가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학문은 토론과 비판의 과정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는 법이고, 회중-청교도 노선의 신학자들이 장로교회에 안에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필자에게 손해가 있을지라도 신 교수에게는 손해가 없을 것이다.신호섭 교수의 작품「개혁주의 전
그 동안 우리는 의로워지는 방식에 대해 사변적이고 이분화된 이해를 여러 모양으로 강요받았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마치 기독교의 정감록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며 잘난체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죄를 사하였고,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행위, 즉 완전한 율법준수,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완전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낸 완전한 삶과 순종이 우리에게 의를 선물했다는 가르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혹시라도 필자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와 죄에 대한 형벌을 해결하지 못했다거나, 예수님이 율법을 못 지킬 정도로 부족하고 무능한 분이었다거나,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가득차서 완전하게 실행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이철 목사님, 오늘 박영돈 교수님이 페북에 올리신 글에 대해 목사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이 글을 보시고, 목사님의 의견을 꼭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한국교회에서 전파되는 메시지는 구원파적인 복음, 값싼 은혜의 복음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실제 목회현장에서 부딪히는 더 심각한 문제는 그와 상반되는 율법주의적 폐해이다. 신앙이 더 진지하고 열심인 교인들일수록 율법주의 족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신음하는 경우가 많다. 올곧은 삶과 거룩에 대한 특별한 열심이 있는 설교자들이 종종 값싼 은혜의 복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너무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청교도들과 조나단 에드워즈를 탐독하는 이들이 거기서 발견한 높은 수준의
제가 요즘에는 방언, 예언, 방언 통역 은사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은사주의, 신사도, 오순절 영성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문론 거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으나, 어차피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목회자들이 다 함께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에 붙들리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7)두렵고 예민하고 무서운 말이지만, 성경적인 사실이니 말 못할 내용도 아니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에서 보았던 많은 사람들 가
힘든 몸으로 맥도날드, 저의 도서관의 가장 안쪽의 자리에 와서 앉았습니다. 문제가 온 차를 수리하겠다고 차 밑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가운데, 허리에 문제가 왔습니다.저는 허리 문제를 30년 넘게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 번 응급실에 실려가서 정맥에 놓는 주사를 여러 대 맞고 간신히 움직여 지기도 했고,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에는 너무 증세가 심하여 허리 근육 속으로 약 15 cm 정도 직접 찔러서 약물을 넣는 주사를 맞고서 일정을 쫓아다니가도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더 있습니다. 모두 3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저의 인생의 눈물 베인 이야기들입니다.저는 총신대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할 때, 그 무렵에 막 출시된 대웅 한약탕기를 기숙사 창틀에
구원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음을 영적으로 깨다는 것을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고 한다. 그때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사해져서 의인이 되어 구원 받는다고 한다.그래서 그들은 자칭 “의인”이기 때문에 죄의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한다. 이 영적 깨달음은 피동적 깨달음이고 인식적인 깨달음일 뿐이다. 즉 신비적인 하나님과의 영의 합일이다. 이 깨달음을 그들은 “구원의 확신”이라고 부른다.그들은 결코 부활을 강조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무슨 짓을 해도 , 심지어 살인하거나 자살한다 해도 자기의 구원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구원파는 현대판 영지주의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그들의 삶속에는 의지적인 회개와 성화의 삶이 빠져있
(이 주제에 대해 기존의 정리된 자료가 없으므로 여기 저기를 찾아다니면서 퍼즐 맞추듯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내용은 계속 보충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자주 방문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영국에서 청교도라는 신앙 물결이 일어날 때, 그 안에 어떤 특성을 가진 분파들이 있었을까? 이것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자료를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지역에 당시 존재하였던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라는 나라들이 있었다. 웨일즈는 1536년, 1543년 두 번에 걸쳐 잉글랜드의 헨리 8세에 의해 복속되어 잉글랜드의 왕을 수장으로 삼는 영국국교회에 편입된 상태였다. 아일랜드 역시 1536
이제 「기독교강요」 3권 16장 에 도착했습니다. 칼빈은 정말 능력있는 신학자입니다. 그의 모든 사고와 생각은 언제나 성경과 함께 갑니다. 칼빈의 중요하다 싶은 모든 말들은 전부 성경 구절들로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인용되거나, 성경 구절들이 괄호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신학은 반드시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함을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제시하지 못하는 신학자들의 말은 그 자신의 사색입니다. 신학 이론은 언제나 성경의 강물에 젖어서 나와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신학자의 이론이 그 자신과 독자들의 신앙과 영혼에 해악을 미칩니다.정독하다가 잠시 멈추어둔 서철원 박사님의 저술 「교의신학전집」의 특징도 중요한 모든 부분마다 관련 성구들이 풍성하게 괄호안
근본주의는 신복음주의와의 갈등에서 그 특질이 형성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기독교계는 자유주의(현대주의)와 근본주의(보수주의, 복음주의) 둘만 있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와의 투쟁이 외적으로 근본주의의 패배로 끝나고, 대 교단들은 자유주의를 제거하기는커녕 자유주의를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소위 ‘넓어진 교회’가 되었을 때, 근본주의는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 분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왜냐하면 근본주의자들은 이단적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것이 주께 대한 배신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1930년대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분리 운동들의 이유가 있다.이 때 여러 근본주의적 독립 교회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작은 교단들도 형성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 근본주의 독립교회, 정식 침례교회 총협의회,
들어가는 말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비록 사본이기는 하지만 헬라어(히브리어) 원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하는 자들은 성경 원문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경 번역자들이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원문의 의미를 번역 성경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창모 목사의 성경 오역(誤譯), 오석(誤釋) 바로잡기(2)"에서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번역이 생기기도 하고, 조금 후에 다룰 “내 아버지여 할 만 하시어든”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코미디 같은 번역이 생기기도 한다.우리는
1. 잉글랜드 종교개혁: 헨리8세 ~ 엘리자베스 1세 (수장령과 39개 조항)잉글랜드 종교개혁은 튜더왕조(House of Tudor)에서 시작했다. 1509년에 즉위한 헨리 8세(Henry Ⅷ, 1509-1547)가 부인 문제로 교황권과 대립함으로 발생했다. 헨리는 1531년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534-1536년 천일왕비), 1533년 앤 볼린(Anne Boleyn)과 혼인하였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인데, 단순한 애정 문제와 교황권에서 분리하기 위한 명목으로 애정 문제를 삼았다는 것이다.헨리 8세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대표임을 공표하는 수장령(the act of supremacy, 1534)을 공포했다. 이것은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 로마 교회를
세상에서 유행하는 ‘긍정적’ 사고의 환상에 젖은 사람들은 미래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이 옷처럼 낡아져서 언젠가 끝이 난다고 예언하고 있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풍성해지기는 하지만 점점 타락하며 쇠퇴해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지구가 종말을 맞을 마지막 날까지 세상은 계속 타락하고 부패해 갈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질서와 권위가 부정되고 파괴되어갈 것이다. 과거에는 죄였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죄가 아닌 것이 된 것처럼, 지금은 죄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미래에는 죄가 아니게 될 것이다.세상의 타락과 멸망은 이미 예기된 것이지만, 문제는 교회도 타락해 간다는 것이다. 교회가 타락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그 원인과 해결 방
어떤 까닭인지 “개혁”라는 용어는 초창기에 종교개혁(츠빙글리, 부처, 불링거, 칼빈)의 스위스 개혁자들과 연계성을 가졌고, 마침내 “칼빈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예정교리였는데, 이 교리는 종종 다른 복음주의 운동 형태들을 거슬러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개혁신앙의 가르침으로 비추어진다.1618-1619년, 네덜란드 도르트에서 모인 국제개혁주의대회는 제이콥 아르미니우스(Arminianism)의 가르침을 요약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대회는 이 다섯 가지에 반대하여 예정교리를 요약하여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채택했다. 이 칼빈주의 5대 교리는 각 교리의 첫 글자를 따서 네덜란드 꽃 튤립(TULIP)으로 요약된다. TULIP: 전적부패(Total D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