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 개혁주의란 말은 종교 개혁주의자들이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후대의 산물이다. 개혁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한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회의 타락한 신학의 교리에서 바른 성경해석을 위한 용어를 사용하여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했다.결국 reformed church(개혁된 교회)라고 하는 용어는 과거 종교개혁 당시 만들어진 교회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개혁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거나 실제로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할 때,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
- 정양호 (KPM선교사)“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후6:14-16, *갈라디아 1:6-9, 행 20:28-31,고후 6:14-7:1)성경, 하나님 말씀은 성도의 영적 양식이
일시: 2022년 10월 24(월, 13:00~17:00)주제: 여성안수, 성경이 말하는가?(2)강사: 이국진목사(여성안수 찬성자, 신약학박사, 예수비전교회 담임)여성안수 반대자 입장인 서청원 교수의 세미나가 9월 5일에 이미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여성안수 지지자이신 분을 모시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토의합니다. 다수의 교단에서 벌어지는 여성안수가 과연 성경적인 것인지? 시대정신이나 이해관계를 따라 진리를 바꾸어도 되는 것인지? 합동이 여성 군목 9명을 위해 만고불변의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에 대해 토의하려고 합니다.2
지금 한국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the Doctrine of Odedance of Christ)에 대한 논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매우 바람직하고 환영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는지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입니다.이것에 대한 연구와 논쟁은 아무리 많아도 과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는 사람이 자기 구원을 위해 자의로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정하여 구원의 준비를 시작하면, 신부의 세례(영세)를 통해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능동순종에 대한 논쟁에 쏠려 있는 일부 목사들과 신학 교수들의 모습은 가히 제정신이 아닌 모습들을 보여준다. 마치 능동순종이 성경에서 확고하게 선포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이제는 급기야 비아냥 거리고 마치 웨민의 신앙고백서를 부인하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 이유는 뭔가를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아주 독선적이고 자신들만 의로운 사람들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
글을 시작하며신약성경의 번역자들은 헬라어 원문에서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를 번역할 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하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막12:16).위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로 번역된 헬라어 “λέγει”(레게이)는 “말하다(say)” 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 “λέγω”(레고)의 ‘3인칭 단수 현재형’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그가 말씀하신다.”인데, ‘개역개정’에서는 ‘3인칭 대명사’ “그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니라.” (고후12:10)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프리카 선교 동역자 여러분,어느덧 찌는 폭풍우, 무더위 여름이 지나고 벌써 푸른 잎이 붉은 치마를 갈아입고 가을 바람이 솔솔불어오는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그린답니다. 적도가 지나는 이곳 우간다는 한 몇 개월간 계속 우기(雨期)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좀 지낼 만하답니다.모기가 물고오는 말라리아, 코로나 장티푸스에 걸려 조금 힘들었지만 선교사의 일상으로 열심히 운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여년이 흐른 오늘에 있어서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는 신학적으로 교리상으로 얼마나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또 얼마나 먼 위치에 있는가? 분명 오늘의 상황은 종교개혁 시대의 상황은 아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상호 적그리스도로 규정했던 심각한 갈등은 지금에 와서는 많이 완화되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그 갈등은 완화되어 있는가? 오늘에 있어서는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에 심각한 갈등은 없는가? 분명히 옛날의 갈등이 완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글을 시작하며예수님이 말씀하신 “악한 농부의 비유”는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마21:33-46; 막12:1-12; 눅20:9-19). 그런데 문제는 이 비유의 내용 중에 막12:8(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의 진술이 마21:39(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과 눅20:15(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의 진술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21:39과 눅20:15에서는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어 쫓아 포도원
- 임진남 목사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현대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을 부정하거나 약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때론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사역이 나타날 때, 그것을 인정하는 신학적 동의는 어느 정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분은 하나님으로 오셨다고 하는 아주 짧고 간단 명료한 이 진리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눅1:35).이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
천주교의 성사제도와 성적자의 사죄권에 관련된 문제는 개신교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개신교회가 2가지 성례만(세례, 성찬) 인정하는데 반해 가톨릭교회는 7가지 성사(세례, 성찬, 신품, 고백, 견진, 혼인, 종부)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그런데 외형상 가톨릭교회가 개신교회에 비해 성사제도가 5가지 더 많다는 차이보다도 성사제도에 대한 두 교회의 내적인 인식에 있어서의 차이는 훨씬 더 심각하다.이 차이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성직자들에게 죄를 사하는 사죄권이 있다는 가톨릭교회의 주장이다. 개신교회 목
- 정양호 선교사(KPM)최근 남아공 동쪽 항구도시의 이스트런던 주말 한 술집에서 술을 즐기며 생일 파티에 참가했던 10대 청소년 2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전세계 뉴스를 탔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선교사가 개척한 “생수교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여 충격이 너무 커 그리스도인의 음주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다.옛날 어린 시절에 보리나 쌀 추수철이나 명절에는 전국적으로 거의 집집마다 막걸리를 만들어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 속에 음주문제가 얼마나 큰 사회 문제였는가를 엿보게 한다
제 9문. 신격에는 몇 위가 계십니까?답. 신격에는 삼위가 계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시니, 이 삼위는 한 분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본체도 하나이십니다. 그리고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격적 특징에 있어서만 구별됩니다 (요일5:7, 마3:16-17, 마28:19, 고후13:4, 요10:20).제 10문. 삼위 안에 있는 인격적 속성은 무엇입니까?답.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시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낳은바 되셨으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영원 전부터 나오십니다. 이름과 속성과 사역과 예배를 아들과 성
정양호 선교사(KPM)해마다 이맘때가 되면18년전 어느 날 저녁 우리 집 가정 예배가 떠오른다. “에스라서”를 읽고 말씀을 나눌 때였다. 우리 집 큰 얘가 갑자기“ 아빠, 김선일씨가 누군지 알 어?” “물론 알지” “죽었대” 하였다. 나는 선교사가 꿈이었던 그가 이라크에서 참살(2004.6.22) 당한 뉴스의 스토리를 죽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우리 아이는 다시,“우리 나라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70여년간 바벨론 포로의 시련을 통과하고 큰 소리로 찬양하는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뭔가 있어” “그게 뭔데?” “ 잘 모르지만 하나님
궤변주의자들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러한 증거들은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항상 나타났고,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그 한계를 벗어나면 교회 공동체가 당시에는 혼란과 다툼으로 마치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랑의 덕목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성경의 가르침이 확고하게 서서 그 진리의 등불을 선명하게 밝혀주었다.역사적으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한 인격 두 본성에 대한 기독론 논쟁뿐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이신칭의, 성자의 동정녀 탄생, 그리고 성경의 무오성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하는 것
우리는 대중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기독청년들은 21세기라는 토양 위에서 이 땅에 기독교 문화를 심어야 하며 기독교 문화로서 대중문화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수적인 사항이 현대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이며 기독교적 비판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대중문화의 악한영향 속에 스며들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방어적 지식이기도 하다.현대인에게서 문화의 차이는 세대차로 나타나며 이러한 세대차는 다만 지식의 변화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자동화기기에 대한 적응력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대차는 분
현금에 한국교회 안에서 야기되는 일부 신학적 교리문제들, 즉 '능동순종', '회심준비론', '행위언약' 등에 대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태도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가르쳤던 내용들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세이다. 일부 신학교 교수들의 가르침을 매우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것 같으나 단 한 번도 성경에 근거하려 바르게 연구되지 않았다. 그저 '누가', 아니면 '어떤 신앙고백서'에서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경을 배격하고 있었다.아래에 기록된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그
제8문.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습니까?답. 살아계시고 참되신 분은 오직 한 분만 계십니다 (신6:4, 고전8:4-6, 렘10:10-12). 세상의 신들은 거짓이다.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신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분명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단번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열 번의 재앙을 애굽에 내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이라고 하는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 가운
제6문.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고 있습니까?답.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위격, 그의 작정과 그 작정의 시행을 알려 줍니다 (히11:6, 요4:24, 요일5:7, 고후13:13, 행15:14-15, 18, 행4:27-28).제7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답. 하나님은 영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시며 영광과 복되심, 그리고 완전함에 있어서 영원하시며, 완전히 충족하며 영원하고 불변하며 이해를 초월하고 편재하고 전능하십니다. 그는 또한 모든 것을 아시며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며, 공의롭고, 긍휼하며 은혜
글을 시작하며“겨자씨 비유”에 대한 필자의 글이 에 게재된 뒤에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격려를 받았다. 물론 여기서 많다는 말은 이전의 다른 글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또 한 편, 비판과 야유도 이전 글들에 비해서 더 많이 받았다. 필자는 “겨자씨 비유”에 대해 비판과 야유를 보낸 이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오래 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을 이름도 없는 필자의 주장으로 인해 포기하는 것은 그렇게 용이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는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