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의 필요성우리는 사물을 우리의 지성으로 직접 탐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한 영이시고 절대적인 인격이시므로 하나님이 자기의 뜻, 경륜과 작정을 알리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자신을 알리시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시는 인간이 직접 알 수 없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알리심이어서 자기 현시로 표현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 계시는 필수적이다. 우리가 지성으로 하나님을 직접 접근하여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계시에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작정을 알리심으로 이해해야 바르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기를 알리심이다. 하나님의 자기 현지로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권능, 지혜, 경륜, 창조사역과 구원계획,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알리심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루시고 그것을 알리셨다. 그러므로 그 사역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이 알리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감추어진 신비 곧 하나님의 자기 존재와 뜻을 알리심이 계시이다.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통하여 자기의 존재, 권능과 지혜, 또 영광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로 인
현재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완성으로 가고 있는 신학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전하지 못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신 지식이 참이 아니라거나 거짓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유래하였으므로 참 지식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거울을 통하여 보는 것과 같고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어서(고전 15:13:12) 완성을 필요로 한다.이 완성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서 마주 볼 때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성에 이를 것이다. 인류의 목표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다. 첫 인류가 역사의 시작에서 창조주 하나님 모시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다. 역사의 끝은 허무가 아니고 처음 창조경륜대로
교회의 첫 신앙고백은 주 예수였다(요 20:18.20,28; 21:7,15-16; 행 1:6,21,24; 2:36,16:31). 그리고 모든 사도의 가르침을 믿었다. 그러다가 교회의 진행과 함께 이단의 발생으로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바른 믿음이 무엇이며, 유사하면서도 바른 믿음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바른 믿음이 아닌 조항들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바른 믿음의 조항들을 정하는 과정에서 사도신경과 신앙의 규범이 공식화되어 이단을 식별하고 바른 신앙을 지키며 교회 교육을 위해서
신학은 중생인이 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또 중생한 지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한 진리를 문장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직하고 체계화한다. 이 일이 신학작업이다.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인간은 들어야 한다. 그 들음이 바로 믿음이요, 그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계시를 들음으로 신학한다. 그러므로 사변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말씀에서 사고한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 믿음에 근거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사고한다. 그러므로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을 주입하여 사고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다. 내 이성이 신학 구성에 공헌하는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므로 듣고 그 말
믿음 = 하나님의 지식 수납의 손하나님을 믿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 사역, 성품, 구원을 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고 확실하게 안다.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은 구원이 창조주 자신의 사역임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안다. 또 믿음으로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계시고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심을 확신 있게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지식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믿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믿음의 본성이처럼 하나님 지식에 있어서 믿음이 지식 획득의 길이다. 믿음은 본래 논증
통상 조직신학은 성경계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통일 종합하는 신학적 작업으로 여긴다. 그러나 교의신학은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할 때 교회의 교리들의 안내를 따라 작업을 한다. 이 교리들은 고대교회의 기본 교리들이다. 그러나 체계화 작업을 할 때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들(credo)을 참조하고 조명을 받는다.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들은 고대교회의 교리들을 수납함과 동시에 구원 얻는 길에 특히 강조를 두었다. 이 신앙고백들은 고대교회의 교리들과 같은 구속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여도 교리적 성격을 갖는다. 루터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삼았다. 개혁교회는 칭의교리를 근본교리로 받지만 성경의 권위를 더 중시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고대교회의 교리들은 보편교회의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존재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한자이시고 절대자이시므로 무한한 권능과 지혜로 큰 사역을 이루셨다. 하나님의 사역은 창조, 섭리, 구원으로, 창조의 완성으로 이루어진다.이 세계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원부터 존재한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자발적 행동에 의하여 생겼다. 창조는 필연적인 사역이 아니다. 창조가 필연적이면 하나님과 세계가 일치되고 창조가 하나님의 본성에서 필열적으로 흘러나오는 유출이 된다.창조에 대한 그의 작정은 영원하여도, 창조된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처럼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영원부터 창조를 작정하셨다. 그의 창조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의 존재만큼 영원하다. 하나님은 영원한 작정대로 우주를 창조하기로 하셨다.하나님의
자연이성으로 신학할 수 없다. 이성이 믿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희랍철학 초기에는 이성이 가장 완전한 지식을 주는 것으로 믿었다. 파르메니테스(Parmenides)와 플라톤은 이성이 신적이어서 가장 확실한 실재의 지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칸트는 이성은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단지 현상들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현상들도 다 이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말하여 관념론 철학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들은 객관적 실재의 지식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으로 바뀌었다. 근세는 이성으로 합리적인 세계를 구성했다고 믿고 주장해 왔는데, 오히려 이성은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이르렀다.이성은 절대적 표준도 확실한 규범도 제시하지 못한다. 자기에 유익하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해서 신학한다는 것은 성경계시에 의거하여 신학함을 말한다. 하나님은 성경에 자기의 인격, 창조경륜과 구원경륜 그리고 창조와 역사의 진행에 대해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성경계시에 의존해서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른다. 성경대로 우리가 하나님께 이르러 가고 구원에 동참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성경에만 의존하여 신학한다.더구나 성경은 하나님의 최종 계시이고 궁극적 계시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 또 성경은 완결된 계시이므로 신적 권위로 역사한다. 그리하여 모든 신학과 교리와 종교를 최종 판정한다.교리도 성경적 진리대로 공식화되었는지를 성경이 판정한다. 성경은 자기 가신성으로써 새로 구성된 신학을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정한다. 성경의 명료한
(다음은 서철원 박사의 (인간론)의 pp.168-171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정통 개혁신학을 배우고, 전혀 이질감 없이 한국인의 신앙 정서에 맞게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개혁신학의 진수를 맛보기 원하는 독자들이 반드시 구입하여 일독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정이철 목사) 언약신학은 개혁신학에만 있다언약사상은 개혁신학에만 있다. 그러나 언약의 설정과 전개가 개혁신학에서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비추어서 언약체결의 목적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언약을 구원 혹은 영생 얻음을 위해서 체결했다는 면에서만 보았다. 영생을 위해서 언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처음 창조가 불완전하여 보충이 필요
고난의 삶: 낮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 의의 성취고난의 삶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두 번째 단계이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성육신 자체와 고난의 삶과 십자가가의 죽음과 지옥강하로 이루어진다. 이 비하 상태에서 한 그의 사역이 인류의 구원을 이루었다. 고난의 삶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계속되었다. 출생도 보통 인간이 당할 수 없는 굴욕적인 출생이었다.또 그의 모든 삶은 죄악과 영적 세력들의 공격과 백성들의 배척과 지도자들의 미워함과 시기에 의해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되 연속적으로 당하였다.그러나 고난의 삶은 고난으로 이어진 것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고난의 삶은 의의 성취에 이르게 되었다. 곧 그의 의의 성취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피 흘려
질문>목사님이 로이드존스와 에드워즈의 성령신학에 대해서 비판하였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성령신학을 오순절 신학과 같다고 했고, 로이드존스가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사람처럼 성령을 받았다고 한 부분을 특히 많이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부흥의 사람인 조나단 에드워즈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했습니다.그런데 서철원 박사님의 최근 교의신학을 보니 내용이 똑 같던데요. 서철원 박사님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되었다고 합니다. 답변>서 박사님은 오순절 운동가들과 신사도 운동가들이 말하는 관점의 성령세례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받았다고 하실 분이 결코 아닙니다. 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가 일부 이단연구가들과 진용식 목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양태론 이단논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피력하였다. 서철원 박사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여호와라고 표현한 진용식 목사의 진술이 옳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구약의 신현은 다 아들 하나님의 현현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여호와로 지목되었다. 아담의 타락시 아담에게 오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시고 아브라함의 장막에 찾아오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시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시다.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에게 다 여호와 호칭을 적용하였다.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도 아들 하나님이신데 여호와 하나님으로 지목되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으로 그가 여호와이시
근자에 우리 합동총회 일부 인사들이 알미니안 계통의 신학적 견해와 부흥운동을 정당한 신학으로 제시하고 주장했다고 들린다. 이런 경향에 대해 반론이 제기되었던 같다. 이런 신학적 견해와 운동은 개혁신학에 어긋난다고 인터넷사이트에서 제시하였던 것 같다. (본 투고자는 아직 그 인터넷사이트에 올린 글들을 읽지 못해서 시비사항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이렇게 반론이 제기되자 시비 받은 인사들이 세를 규합하여 그 반론자를 이단으로 정죄하여 교단에서 출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들린다. 이런 해결방식은 시비 받은 신학 문제를 반성하고 고치려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사료된다.또 이런 방식은 신학적 시비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어서 건전한 방식이 아니라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 서철원 박사(조직신학)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후 조직신학 저술을 정리하여 전집 7권(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구원론)을 출판했다. 서철원 박사의 네덜란드 자유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 A Study in the Relation of the Incarnation and the Creation, Rodopi, 1982년)은 독일 튀빙겐 대학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논문에 수록된바 있다. 튀빙겐 대학의 100대 논문에 선정된 한국인 신학자로는 김세윤 박사와 서철원 박사 두 사람 뿐이다. 김세윤이 취득한 “바울 복음의 기원”은 칼 바르트에게 우호적인 논문이다.
한국복음주의연합(공동대표 이병휘·이흥선 목사)이 총신대학교 제 2종합관 카펠라홀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2017년 2월 23일 복음주의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서 서철원 박사(전 총신대학교 신대원장)는 ‘종교개혁과 칭의’, 이흥선 목사(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 실천목회연구과정 교수)는 ‘복음의 핵심, 부활인가 십자가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독일의 튀빙겐 대학이 선정한 ‘20세기 대표 신학자 100인’에 포함된 서철원 박사는 첫 번째 강연에서 종교개혁의 이신칭의를 공격하는 이론들 몇 가지를 지목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교회의 경우 예수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 외에 행함을 더해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편만해 있었다고 한다.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니 거기에 선행, 구제와 고행 등을 더해서 의롭
지금 한국교회에서 시비되는 중요한 논의 중 하나는 흠정영역 곧 킹 제임스번역성경이 가장 완벽한 성경으로 모든 계시의 내용을 다 담고 있어서 이 성경대로 믿어야만 완전한 신앙생활을 할수 있다는 시비다. 더욱이 “개역 판은 심히 부패되었으므로 개역성경은 교리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하는 심히 황당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제기하여 한국교회에 혼란을 많이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런 무식한 자들의 주장을 정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1611년 흠정역 번역자들이 이용한 사본의 편찬을 생각해보자. 15세기 문예부흥이 일어나므로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서 원천에로 돌아가서 고전 본래의 가르침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기 바랐다. 그래서 16세기 최대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가 당시 알려진 6개의 사본들
질문>서철원 교수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재창조를 기념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소위 이단을 연구한다는 사람들도 부활과 재창조 개념을 전혀 알지 못하고서 부활을 재창조로 설명하는 사람을 오히려 완전한 이단이라고 시비를 걸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신학적으로 재창조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의 핵심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하나님은 범죄하여 반역한 백성을 다시 돌이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습니다. 이 백성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이루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피 흘리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갚아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므로 백성 회복을 이루신 것
최근 한국, 미국, 카나다에 거주하는 58인의 목회자, 평신도들이 ‘김성로 부활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하 ‘김부사’)이라는 명칭의 연대를 결성하였다. 지난 10여년 이상 , , 등의 방송국들과 신문들을 통해 전파된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괴이한 ‘부활복음’(부활교)의 심각성을 한국 교회에 알리고, 또한 한국 교회가 이 문제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처리하도록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하였다.‘김부사’의 호소문 “안식교와 유사한 춘천한마음 김성로 부활교”라는 제목의 글에는 김성로 목사의 책, 칼럼, 설교영상 등에서 있는 그대로 발췌한 그의 비성경적인 부활신앙 사상이 내포된 많은 자료들이 정확하게 제시되었고, 각 교단의 이단문제를 다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