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계시를 주실 때 선지자와 사도들을 영감하시고 사용하셨다. 그들의 지각을 조명하사 주신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게 하셨다. 또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므로 받은 계시를 원형대로 보전할 수 있게 하셨다.계시를 문자로 거룩한 책에 기록하게 하실 때도 순수하고 정확하게 기록되도록 하기 위하여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계시 기록자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기록자들과 그들의 기로겡 호흡하셨다. 하나님이 호흡하셨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뜻한다. 성령의 특별하고 직접적인 역사로 성경이 기록된 역사를 영감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기록되기 때문에
성경은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시가 문자로 기록되어 만세에 순전하게 보존되게 하시므로 인류의 구원이 가능하게 하셨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에 특별계시가 다 기록되게 하셨다. 성경은 그리스도교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고 규범이 되어 구원에 기르게 하는 신앙과 생활의 유일규범이다.성경은 신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성경과 계시 간에 아무런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곧 그의 입으로 선포했던 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 자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임재의 체험은 주 예수를 믿는다는 신앙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에 성령의 임재를 늘 감지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에 의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엡 3:17).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함이 바로 성령의 내주이다.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주 예수를 계속해서 믿으며, 우리 속 사람이 능력을 입는다.성령을 받음은 능력의 원천을 받음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힘 입고 행사하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은 기
계시는 은혜의 방식으로 왔다. 특히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호의로 왔다. 그러므로 은혜는 죄의 상해를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은혜는 자연의 완성과 양양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그러나 로마교회에 의하면 본래 자연은 고유한 존재로 있고 그 후 은혜가 추가적으로 와서 자연을 보충한다. 처음에 인간이 가졌던 원시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추가적 은사로서 초자연적이다. 이 추가적 은사에 의해 처음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 완전해졌다. 이처럼 은혜는 자연을 보충한다. 그러므로 자연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처음 창
서철원 박사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Heidelberger Katechismus) 해설서이다. 전 세계 개혁교회의 표준적인 요리문답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앙과 생활이 하나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믿음에서 생활이 자동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도록 전개하여 믿음과 생활을 하나로 일치시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제시한다.서철원 박사는 문답 중에 의에 관해서 율법주의적인 색채가 있는 부분들은 해설하면서 신약의 가르침대로 시정하였다. 또 성경과 상충되는 부분들과 신앙의 3요소 문답항도 성경대로 수정 보완하였다. 성령을 기
특별계시는 율법과 복음의 형태로 왔다. 둘 다 구원의 길로 제시되었다. 율법은 모든 명령을 지켜라, 그리하면 살리라 (신 4:1; 5:29-33; 6:1-3; 8:1)의 형태로 주어졌다. 그러므로 구약 교회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고 이로써 구원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복음은 죄 용서와 영생의 약속으로 왔다.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은 그리스도의 출생과 십자가와 부활로 종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과 십자가로 율법의 요구를 다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율법은 구원의 길로서 폐지되었다
직접적 말씀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직무를 부여하실 때 말씀하셨다. 또 인류와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을 만드실 때도 말씀하셨다. 타락 후 심판과 구원계획을 알리실 때도 말씀하심으로 계시하였다. 처음 세상을 심판하실 때 노아에게 자기의 계획을 말씀으로 알리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세상의 구세주의 조상으로 삼는 일과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을 말씀으로 알리셨다. 특별히 아브라함 대신 속죄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임을 확실하게 계시하셨다 (창 22:1-8). 또 이삭과 야곱에게도 말씀하시고 자기의 계획을 알리셨다.모세를 부르
신인관계 회복은 일반계시로 될 수가 없다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단절되었으므로 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일반계시로서는 될 수가 없다. 인류와 모든 창조에 저주가 임함으로 자연의 빛이 흐려져서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 빛이 흐려지고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지게 되었다. 즉 죄의 본성이 계시를 변조하였다. 그러므로 더 밝은 빛이 와야 한다. 처음 관계를 회복하여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치료하는 안약이 와야 한다. 이것이 구속적 특별계시이다. 특별계시는 치료하는 의약으로 왔다.“그
특별계시특별계시는 창조 후에 말씀으로 온 계시이다. 말씀의 형태로 왔으므로 특별계시는 말씀계시라고 한다. 하나님은 일반계시로는 자기의 경륜과 작정을 다 알리실 수가 없었다. 일반계시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권능을 알리셨고 그의 존재와 창조사역을 알리셨다. 그러나 일반계시로는 자기의 작정과 구원경륜 또 인류역사의 진행과 역사의 종말을 알리실 수 없으므로 말씀의 형태로 인류에게 계시하셨다. 이 계시는 계시를 받으면 알 수 있는 합리적인 존재들에게 하셨고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직접 적용되는 백성에게 이루어졌다.특별계시는 비구속적 특별계시
하나님은 창조와 인간의 구조로 하나님을 계시하게 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구조와 창조 자체가 하나님을 계시한다. 또 종족들에게 도덕법을 주셔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며 상을 주시는 자임을 알게 하셨다. 또 각 개인의 양심에서 말씀하시고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일반계시의 가치와 의의일반계시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죄 때문에 일반계시가 구원에 이르는 일을 하지 못한다. 또 일반계시는 구원계시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생활에서 일정한 역할을 감당한다.모든 종교의 기초모든
계시의 필요성우리는 사물을 우리의 지성으로 직접 탐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한 영이시고 절대적인 인격이시므로 하나님이 자기의 뜻, 경륜과 작정을 알리셔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자신을 알리시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시는 인간이 직접 알 수 없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알리심이어서 자기 현시로 표현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 계시는 필수적이다. 우리가 지성으로 하나님을 직접 접근하여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시는 계시에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작정을 알리심으로 이해해야 바르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기를 알리심이다. 하나님의 자기 현지로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권능, 지혜, 경륜, 창조사역과 구원계획,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알리심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루시고 그것을 알리셨다. 그러므로 그 사역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이 알리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감추어진 신비 곧 하나님의 자기 존재와 뜻을 알리심이 계시이다.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통하여 자기의 존재, 권능과 지혜, 또 영광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로 인
현재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완성으로 가고 있는 신학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전하지 못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신 지식이 참이 아니라거나 거짓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유래하였으므로 참 지식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거울을 통하여 보는 것과 같고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어서(고전 15:13:12) 완성을 필요로 한다.이 완성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서 마주 볼 때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성에 이를 것이다. 인류의 목표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다. 첫 인류가 역사의 시작에서 창조주 하나님 모시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다. 역사의 끝은 허무가 아니고 처음 창조경륜대로
교회의 첫 신앙고백은 주 예수였다(요 20:18.20,28; 21:7,15-16; 행 1:6,21,24; 2:36,16:31). 그리고 모든 사도의 가르침을 믿었다. 그러다가 교회의 진행과 함께 이단의 발생으로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바른 믿음이 무엇이며, 유사하면서도 바른 믿음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바른 믿음이 아닌 조항들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바른 믿음의 조항들을 정하는 과정에서 사도신경과 신앙의 규범이 공식화되어 이단을 식별하고 바른 신앙을 지키며 교회 교육을 위해서
신학은 중생인이 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또 중생한 지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한 진리를 문장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직하고 체계화한다. 이 일이 신학작업이다.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인간은 들어야 한다. 그 들음이 바로 믿음이요, 그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계시를 들음으로 신학한다. 그러므로 사변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말씀에서 사고한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 믿음에 근거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사고한다. 그러므로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을 주입하여 사고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다. 내 이성이 신학 구성에 공헌하는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므로 듣고 그 말
믿음 = 하나님의 지식 수납의 손하나님을 믿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 사역, 성품, 구원을 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고 확실하게 안다.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은 구원이 창조주 자신의 사역임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안다. 또 믿음으로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계시고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심을 확신 있게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지식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믿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믿음의 본성이처럼 하나님 지식에 있어서 믿음이 지식 획득의 길이다. 믿음은 본래 논증
통상 조직신학은 성경계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통일 종합하는 신학적 작업으로 여긴다. 그러나 교의신학은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할 때 교회의 교리들의 안내를 따라 작업을 한다. 이 교리들은 고대교회의 기본 교리들이다. 그러나 체계화 작업을 할 때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들(credo)을 참조하고 조명을 받는다.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들은 고대교회의 교리들을 수납함과 동시에 구원 얻는 길에 특히 강조를 두었다. 이 신앙고백들은 고대교회의 교리들과 같은 구속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여도 교리적 성격을 갖는다. 루터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삼았다. 개혁교회는 칭의교리를 근본교리로 받지만 성경의 권위를 더 중시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고대교회의 교리들은 보편교회의
질문>교수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구원 신학과 성경의 구원론, 특히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방법이 일치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무런 행위를 하기 전에 오직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하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표준 신앙고백서에는 원래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계명준수였다고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존재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한자이시고 절대자이시므로 무한한 권능과 지혜로 큰 사역을 이루셨다. 하나님의 사역은 창조, 섭리, 구원으로, 창조의 완성으로 이루어진다.이 세계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영원부터 존재한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자발적 행동에 의하여 생겼다. 창조는 필연적인 사역이 아니다. 창조가 필연적이면 하나님과 세계가 일치되고 창조가 하나님의 본성에서 필열적으로 흘러나오는 유출이 된다.창조에 대한 그의 작정은 영원하여도, 창조된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처럼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영원부터 창조를 작정하셨다. 그의 창조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의 존재만큼 영원하다. 하나님은 영원한 작정대로 우주를 창조하기로 하셨다.하나님의
자연이성으로 신학할 수 없다. 이성이 믿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희랍철학 초기에는 이성이 가장 완전한 지식을 주는 것으로 믿었다. 파르메니테스(Parmenides)와 플라톤은 이성이 신적이어서 가장 확실한 실재의 지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칸트는 이성은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단지 현상들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현상들도 다 이성이 만들어낸 것으로 말하여 관념론 철학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들은 객관적 실재의 지식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으로 바뀌었다. 근세는 이성으로 합리적인 세계를 구성했다고 믿고 주장해 왔는데, 오히려 이성은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이르렀다.이성은 절대적 표준도 확실한 규범도 제시하지 못한다. 자기에 유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