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8-19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혼자 거하는 아담을 위해 돕는 베필을 만드실 때 생겼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흙으로 각종 들짐승들과 새들을 만드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카라’) 보시려고 그들을 아담 앞으로 인도해 오셨다. 아담은 그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 줬는데 그것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 인간은 이렇게 처음부터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던 존재다(호모 로쿠엔스, Homo loquens). 즉 ‘의미있는 소리’로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을 사용할 줄 알았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현생 인류는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 언어(‘싸파’)를 사용했다.창세기 11:1-9에는 온지면에 흩어져 땅을 개발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문화명령(the cultural mandate)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서 설명한 성령의 은사들을 곧바로 12절-27절에서 몸의 지체 비유로 다시 설명한다. 바울이 몸의 지체 비유를 동원하는 까닭은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고린도 교회의 이해력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몸의 지체 비유를 통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몸은 하나지만 몸의 지체들은 눈, 코, 입, 손, 발 등 다양하다. 그런데 몸의 다양한 지체들은 다 한 몸에 붙어 있다. 이렇게 몸과 지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4-7).바울은 4-6절에서 다양한 은사와 직임에 관여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이 여기서 삼위 하나님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중복을 피하려는 문학적 습관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이 “그의 뜻대로”(11절) 교회에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교회의 유익에 있음을
현대의 옹알거리는 거짓방언 옹호자(이하 ‘방옹자’)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집중적으로 기술한 그 문제의 방언이 정상적인 기독교의 방언이었으나 신자들에 의해 남용되고 오용됨으로 인해 문제를 야기했을 뿐이라고 한다. 바울은 그 당시의 고린도 교회를 더럽혔던 그 방언을 성령으로부터 나타난 기독교의 정상적인 은사였다고 보았고, 또한 바울이 적극적으로 그 방언을 권장했다고 주장한다.만약 극렬한 방옹자들과 많은 현대 교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의 그 방언이 성령이 주시는 기독교의 방언이었다면 아마도 바울은 다른 문제들과 비슷한 비중을 할애하여 방언 문제를 다루었거나 어쩌면 더 가볍게 다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이 고전 14장에서 이야기하는 그 방언이 정상적인 성령의 은사였다면 그것
방옹자(거짓방언을 옹호하는 자)들은 방언기도가 초대 교회를 부흥시킨 원동력이었다고 믿는다.1) 따라서 이들은 방언이 예루살렘 초대 교회 안에 풍성하게 있었으며, 그 후에도 부흥하는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2) 이들은 방언기도가 있는 곳에서는 교회가 부흥하고, 방언기도를 반대하거나 없는 곳에서는 교회가 쇠퇴한다고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방언을 반대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3)방옹자들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방언 현상이 기록된 있었던 사도행전의 본문들을 직접 살펴보면서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살펴보자. 1. 사도행전 2:4-7절보혜사 성령이 임하셨던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주의 제자들은 본토 유대인들에게는 아람어로, 천하각국으로부터
베드로와 120여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성령은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을 동반하면서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성령이 그들 위에 처음 임하셨을 때 동반된 세 가지 특이한 현상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한 것’과 ‘그들이 다른 언어(방언)들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령은 왜 이런 현상들을 동반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일까?첫 번째 현상인 ‘바람 같은 소리’는 오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청각적인 신호(sign)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에 있던 제자들은 아무도 성령을 경험한 자가 없었다. 따라서 영이신 성령이 아무런 신호 없이 조용히 오셨다면 그 누구도 성령의 오심을 눈치
오늘 날의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여러 종류의 말씀을 임으로 동원하여 자기들의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에 그 대부분의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두 가지가 빠졌다. 오늘 두 가지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거짓 방언현상을 위해 악용되는 성경 말씀들에 대해 더 알고자 원하는 분들은 아래에 표시된 관련기사를 보기 바란다.) A.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가복음의 끝 부분에서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믿는 자들에게서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
성경의 방언의 대상은 사람성경의 방언의 주체는 하나님이었고 방언의 대상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하여 사람에게 메시지를 주셨다. 그러나 오늘 날의 방언이라고 주장되는 소리현상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여 시행되고 있다. 방언을 한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 시간에 그 소리현상을 써먹는다. 이점에 있어서 오늘 날의 방언이라고 주장되는 소리와 성경의 방언은 매우 다르다.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최초의 방언은 성령의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방언을 발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방언에 대한 어떤 난해한 부분은 마치 사람의 영혼이 방언을 말하는 주체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보면 사람의 영혼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요즘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방언이라고 칭하는 소리현상은 성경의 방언과 너무나도 다르다. 오늘 날의 정체불명의 소리현상을 천사의 언어, 기도의 언어, 영혼의 언어, 영적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예찬하는 주장을 지지해주는 성경의 말씀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명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는 난해구절들이 도용되고 있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동일한 현상이 타종교인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서 그런 소리를 지속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 소리현상과 타종교에서 나타나는 그것의 차이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소리는 성령의 방언이고 이상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소리는 귀신의 장난이라고 막연하게 여길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나쁜 불륜’이라는
로랜스 콩 목사는 원래 싱가폴 대학에서 기업경영을 전공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달라스 신학교에서 유학하면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달라스 신학교는 매우 성경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달라스 신학교는 성경의 방언, 방언통역과 예언이 성경이 완성되고 신약 교회가 완성되기까지 임시로 존재했던 한시적인 은사였고, 오늘 날의 방언과 예언은 성경과는 무관하다고 가르치는 학교이다. 그러므로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을 연구한 목회자들은 오늘 날 도처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방언이라는 소리현상을 성경의 방언이라고 믿지 않는다. 지금의 예언운동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비성경적인 현상으로 간주한다.로렌스 콩 목사가 그러한 학교를 선택하여 신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그도 그때가지 그런 노선의 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