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잉글랜드 종교개혁: 헨리8세 ~ 엘리자베스 1세 (수장령과 39개 조항)잉글랜드 종교개혁은 튜더왕조(House of Tudor)에서 시작했다. 1509년에 즉위한 헨리 8세(Henry Ⅷ, 1509-1547)가 부인 문제로 교황권과 대립함으로 발생했다. 헨리는 1531년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534-1536년 천일왕비), 1533년 앤 볼린(Anne Boleyn)과 혼인하였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인데, 단순한 애정 문제와 교황권에서 분리하기 위한 명목으로 애정 문제를 삼았다는 것이다.헨리 8세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대표임을 공표하는 수장령(the act of supremacy, 1534)을 공포했다. 이것은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 로마 교회를
구원을 설명할 때 타인의 견해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한 구원론 강의에서 자기 구원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훈련을 한 적이 있다. 먼저 강의하는 필자의 구원에 대해서 간략하게 제시하면서, 강의 참석자들이 구원 과정(구원 서정)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었다.그 훈련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타인의 구원 설명을 답습하지 않았고, 자기 구원에 대해서 자기 신학과 경험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시도했다고 본다. 자기 구원 과정을 몸소 경험한 사람은 루터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인 것은 구원 과정(구원 서정)이 같은 유일한 사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부패된 교회에서 나오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칼빈은 조용하게 탐구하려다가 제네바에서 개혁교회를 이루기도 했다. 믿음의 선진들의 시행
존 페스코에 대한 연구 논문이 몇 개 있다. 이윤석 박사는 “결정적 성화 개념에 대한 존 머레이와 존 페스코의 상반된 견해” (「한국개혁신학」 46권, 2015)에서 페스코의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제시했다. 우병훈 박사는 “칼빈의 모세 언약 이해—존 페스코와 코넬리스 베네마의 논쟁에 비추어서” (「칼빈연구」 제13집(2016)에서 모세 언약에 대한 두 이해를 제시했다.17세기 웨민고백(이하 WCF) 이후 끊임없이 칭의 논쟁은 안과 밖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능동적 칭의와 수동적 칭의, 모세 언약(율법) 이해는 개혁 신학 진영 안에서 펼쳐진 내용이고, 전가 교리 부정, 무율법주의, 이신칭의 부정 등은 밖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신칭의
칭의 이해(구원 탈락 가능성)에 대해서 2016년부터,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2017년부터는 담론을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칭의 이해에 관해서는 직접 토론에 참가하였고 CLC를 통하여 을 출판했다. 그리고 ‘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는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다. 나중에 이것도 저술로 묶는다면 또 하나의 좋은 신학담론을 한국 교회가 소유하게 될 것이다.‘능동적, 수동적 순종’에 대한 담론은 짧은 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걸쳐서 누적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칭의 이해와 관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칼빈의 말처럼 칭의 이해는 신학에서 경첩(hinge) 역할을 하고 있다. 문짝이 경첩과 연결되지 않으면 제 구실하지 못할 것이니, 루터의 말처럼 칭
성경에서 언약은 창세기 6:18에서 노아와 맺은 언약에 최초로 등장한다. 개혁파는 창세기 1장에서 무죄 상태인 아담에게 주신 명령을 언약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노아 언약이 새로운 생활 체계를 이루는 구조이다.아담 언약은 첫 언약이고 실패한 언약이다. 실패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이다. 이 때 죄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다. 죄는 언약을 깨드리는 것인데, 언약을 깨는 것은 반역이다. 범법은 언약이 유지되지만 반역은 언약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반역을 범하면 반역자는 그 땅에서 살 수 없이 3족을 멸하는 것이 왕권의 위계이다.첫 상태에서 죄는 정녕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창 2:17). 아담은 반역했고 하나님은 반역한 아담을 즉결 처분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회복 방안을 선언하셨다(창 3:15
‘방언(方言)’은 표준어로 사투리, 즉 지방어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여러 의미로 신학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단수형(글롯사)과 복수형(글롯사이)으로 등장한다. 이창모 목사는 복수형이기 때문에 다양한 외국어로 이해했다. 방언은 1세기 예루살렘과 고린도에서 발생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이창모 목사는 고전 14:14-15절에서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했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린도전서 이후로 방언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창모 목사는 몬타누스파들이 방언했다는 견해를, 몬타누스의 추종자인 프르스길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가 키벨레(Cyblele) 신전에서 이상한 노래로 흥분시키는 방법을 도입한 것으로 제시했다.
신학, 학문을 진행할 때에 사고 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체계가 없을 때에는 많은 혼란을 양산할 것이다. “체계 없는 사고 체계”에서 나오는 산물은 반드시 혼란을 선물로 제공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완전한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인간에서 나온 산물은 위험하다(마 15:11). 그럼에도 인간에서 나온 산물로 인류는 유지되었고, 유지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갖는 부조리의 원인이며, 인간미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은 체계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한다. 기존에 사용하는 어휘 개념을 이해하며 사용하는 것이고, 자기 개념을 자기-어휘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학생은 기존 어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선생은 자기-어휘 개념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연하게 시작한 에피소드가 중대한 실체가 되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났고, 발 없는 말이 지구를 왕래하고 있다. 신학 담론은 유익반 손해반이다. 무의미한 담론이 계속되면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우리의 담론을 정리하고, 상호 확인한 뒤에 계속 논의를 전개하기를 제언한다. 서로 주장하지 않았던 것을 주장한다고 우기는 것도 부당하고, 사과한 것을 계속 지적하는 것도 부당하다. 1. 그리스도가 능동순종으로 자기를 구원받게 해야 했다는 주장에 대해학문은 어려운 것을 쉽게 표현하는 것이지, 쉬운 어휘를 어렵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1+1=2을 말하려고 1+2=3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1+1=2)라는 명백한 의미를 어떤 부연 설명(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3권, 47장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사역(그리스도의 비하)을 정리하고 있다. 바빙크가 사용하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살피기 위함이다. 바빙크는 그리스도 속죄 교리, 속죄제사(희생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빙크가 속죄 교리를 부정하는 형태로서 소시누스파를 심각하게 여겼음을 보고 있다.소시누스 파의 중심인물을 삼촌과 조카 사이였던 두 사람(Laelius(1525-1563) and Faustus (1539-1604)이었는데, 두 사람은 로마 교회를 떠나 방랑하면서 개혁파들과 토론을 즐겨했다. 삼위일체를 부인했고 조카는 Unitarianism을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정한 대표적인 위인들이다. 1597년 폴란드로 이주해서 1605년 라코비안 요리문답(Racovi
1646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하 ‘웨민고백서’)는 잉글랜드 의회파가 주도했고, 스코틀랜드 장로파가 업저버로 참석하여 형성한 신앙 표준 문서이다. 1658년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은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가했던 회중주의자들이 후에 별도로 런던의 사보이 궁에서 모여 작성한 선언문이다.회중 제도를 추구하는 원로(Elder)들은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예레미야 버로우(Jeremiah Burroughs, 1600-1646), 필립 나이(Philip Nye, 1595-1672), 시드락 심슨(Sydrach Simpson, 1600-1655),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
바빙크는 종교개혁에서 확립한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가 점차 신비적, 윤리적 혹은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우려하며,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바빙크는 1800년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대속 교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신비적, 윤리적,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제시했다(439쪽).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측에서 죄의 속죄 교리가 복음의 한 요소가 아니라, 바울에 의해서 첨가되었다고 주장했다(440쪽). 그러나 바빙크는 예수의 대리적 고난과 죽음에 대한 고백을 강조했다(440쪽).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기독교 고백의 심장과 핵심으로 제시했다(441쪽). 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고 주장했다(441쪽). 이것은 비밀 그리스
서철원 박사는 바빙크 신학이 사변이 있다고 했다. 바빙크는 20세기 대표적인 칼빈파 신학자이다. 바빙크 이후에 진행된 칼빈파 신학은 바빙크보다 더 사변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의 석학은 사변으로 경도하는 개혁파 신학에 대해서 주의를 경고했다. 한국 개혁파는 세계 개혁파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국 개혁파가 바르게 선다면 세계 개혁파가 루터와 칼빈에 입각한 종교개혁 사상을 풍성하게 형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서 박사의 견해를 따르면 바빙크의 신학보다 더 사색적이지 않고, 성경과 교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다. 필자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비하 사역과 승귀 사역으로 구분했다. 47장이 “그
우리는 2016년에 김세윤 교수의 신학에 대해서 많은 탐구를 했다. 그 결과를 2017년에 (CLC)을 출판했다. 이 신학담론의 장을 위해 (대표 정이철 목사)을 활용했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 이해를 “유보적 칭의”라고 최덕성 박사께서 정립하면서, 한국 교회는 유보적 칭의와 구원의 탈락 가능성에 대한 담론으로 뜨거웠다. 이제 우리는 김세윤의 칭의를 “유보적 칭의”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칭의’에서 ‘의’라는 개념 이해로 논의가 확장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라는 개념이 있고, 루터의 개념인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남은 죄’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신
1>손성은 목사가 지난 해 6월에 SNS에서(facebook.com)에 서철원 박사의 신학 사상에 대해 게시한 글에 75개 정도 댓글이 달리면서 많은 호응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정이철 목사가 을 통하여 손성은 목사의 글에 대한 답변을 게시했다.2>손성은 목사가 포스팅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바른믿음의 글을 재인용).“한국교회의 그 유명한 신학자, 그것도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강조한다는 한 신학자의 말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한국교회만 아니라 2천년 세계교회가 깨닫지 못하였고, 칼빈의 신학도, 청교도의 신학도 자신
필자는 신동식 목사의 권유와 인도로 출판사 우리시대에서 「영분별을 위한 신학좌표」를 처음 출판했었다(2017년). “신학좌표”라는 말은 지금도 생소한 것 같다. 그러나 신학하는 사람, 신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신학좌표(神學座標, theological latitude, theology coordinate), theological latitude를 구글에 검색하니 GPS을 근거로 신학교 위치가 나왔다. theological latitude, theology latitude는 외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인 것 같다. 신학좌표는 문자의 의미대로 “신학에 어떤 포인트 위에 신학하는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이다. GPS는 위도(緯度, latitude)와 경도(經度, lo
1. 들어가는 말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누구인가? 정이철 목사가 에드워즈 자신의 신비적 체험과 부인 사라의 신비적 체험 등을 기점으로 꾸준하게 비평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이철 목사 외에도 상당히 저명한 많은 연구자들이 에드워즈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비평의 내용들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에드워즈에 대해서 높은 평가가 있는 반면에 매우 심각한 비평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드워즈를 비평한 학자들은 우리가 신학을 높이 평가하는 위인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구속사」라는 저술이 있다. 에드워즈가 노샘프턴(Northampton) 교회에서 1739년에 6개월 동안 설교한 30편의 원고를 그의 사후에 스코틀랜드의 존 어스킨(John Erskine, 1721-1803)이『구속 사역의 역사』(1774년)라는 명칭으로 출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귀탁이 번역하여 부흥과개혁사에서 「구속사」(2015년)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우리나라의 신학교에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은 상당히 중요하고 관심을 받는 주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드니 그레이누스(Sidney Greidanus) 혹은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을 통해 많은 신학생들이 그것을 접했다. 게할더스 보스(Ge
정이철 목사의 “에드워즈를 세우고 예수가 손해보게 하는 연구 그만해야 한다”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기사에서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참 부흥과 거짓 부흥의 차이필자는 사도행전의 참 부흥과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귀의 거짓 부흥의 차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1.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선포하는 이적들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역사 속의 많은 거짓 부흥운동은 대부분 이미 신앙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큰
어떤 목사가 나에게 유투브 동영상 두 편을 보냈다. ‘리얼 크리스천 1부’, ‘리얼 크리스천 2부’라는 제목의 두 개의 영상이었다. 미국 뉴저지의 신사도-행위구원론 교회라고 소문한 ‘사랑과진리교회’의 벤자민 오 목사가 김세윤, 권연경, 최갑종,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과 인터뷰하는 내용의 영상이었다.필자는 한국 교회 구원론을 ‘구원파 구원론의 신학’이라는 김세윤의 주장에 대해서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리얼 크리스천 1부’의 도입 부분에서 김세윤 교수는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정죄한 스스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대다수 교단의 목사들의 복음 선포가 사실 상 구원파 신학”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하였고, 그 뒤를 이은 ‘바울신학의 대표 연구자’라고 소개된 권연경 교수, 백석대학교 총장인 최갑종 교수도 유사한
필자는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조하기도 한다. 학생이 교과서와 참고도서 등 관련도서를 구입하는 것이 학습하는 사람의 중요한 준비 자세이고 항속적으로 공부하는데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에 근거한 것이도 하다. 어떤 주부가 1,000원 할인을 받기 위해서 3,000원의 교통비를 소요했다면, 그 주부는 2,000원의 손해를 본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주부는 알뜰한 정신이 그 가정의 가계를 튼튼하게 한다. 숫자 지표가 아니라 공동체의 정신(mental)이 중요하다. 정신을 만드는 유일한 문화는 책이다. 미디어(드라마 등)로 형성시킨 정신은 현세적이고 임시적이고 소비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책으로 만들어진 지식은 책을 만드는 사람의 탁월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