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로 인하여 한국에 전염병이 확산이 되어 ‘국가적 재난’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은사주의’를 추구한 교회(이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언론에서 잘 비판)로 인하여 한국 사회에서 주일예배를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 행하는 중대형교회처럼 ‘부정적 이미지’에 더 강화하게 하였다.그렇다면 중대형교회가 순결과 깊이보다 세속과 크기를 추구한 것이 인본적이고 세속적인 것(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중대형교회와 초대형교회는 기업이나 사업으로 이해)처럼 ‘은사주의’를 추구하는 교회는 샤먼적이고 사이비적이고 몰상식적 집단으로 한국 사회에 보이게 되었다.그러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쟁 상황처럼 세상을 공포와 불안으로 흔들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일진데 영적 원인도 있을 것이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을 때 전염병과 전쟁과 가뭄으로 고통받았다. 그것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죄를 인지하고 회개했을 때 또 하나님은 약속처럼 용서하시며 땅을 회복시키셨다.지금의 전염병도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각자의 삶을 뒤돌아보며 나태하고 무관심했던
한국교회는 ‘이단’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지만 사실상 이단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현실’을 보면 신학교육에서 반드시 ‘이단연구’를 필수로 가르쳐야 하고 교회는 전문적인 강사를 불러 이단에 대해 강의해야 한다.그렇다면 이단이 무엇인가를 논한다면 교부와 신학자들의 의견을 모으면 “이단은 정통으로부터의 분리”라 할 수 있고 이단(Heresy)을 판단하는 기준인 정통(Orthodoxy)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과 ‘신조(2대 신조로 사도신조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이고 핵심은 니케아)’이고 16세기 교회개혁 전에는 ‘교부’까지 포함
전염병으로 인하여 주일예배를 하지 않은 교회가 취한 ‘온라인 예배’는 분명하게 성경적 신학적 예배가 아닌 현실하고 타협한 ‘인본주의적 예배’이고 이 글의 목적은 “비난이 아닌 신학적 비판”이다.그리고 이러한 이유는 ‘예배의 기본 4가지 조건’으로 “날(통일성), 성찬(거룩성), 회중(보편성), 집례자(사도성)”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로 주일, 예수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성례전으로 성찬식(성찬론으로 3가지로 죽음, 부활, 다시 오심을 기념이 올바른 이해), 예배의 실제적 참여자인 회중, 예배의 핵심인 설교와 성찬의
전염병으로 한국 사회가 고통과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심각한 문제는 회개의 내용이 성경과 반대로 국가적이고 민족적이고 윤리적인데도 불구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하면서 주로 ‘구약’의 메시지를 사용한다(역대하 7:13-14).“들어라.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메뚜기를 시켜 땅을 황폐하게 하거나, 나의 백성 가운데 염병이 돌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불교는 크게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뉜다. 여기서 ‘승’은 사람을 미혹의 세계로부터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가 주는 ‘탈 것’을 의미한다. 소승불교가 석가의 가르침인 원시불교를 토대로 하는 반면에, 대승불교는 석가 사후 수백 년이 지나고 새로운 경전이 만들어지며 신흥 불교로 일어났다. 여기에는 석가의 직접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섞여 있다. 이 때문에 “대승불교는 석가의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대승비불론’이 학자들 사이에서 주장되고 있다.대승불교는 여러가지 면에서 기독교와 흡사하다. 대일여래나 아미타불 등과 같은 신
스페인에 위치한 산티아고가 순례길로 유명하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면서 주목받게 된 이곳은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기까지 했다. 이후 이곳은 가톨릭 신도들은 물론 종교에 상관없이, 삶을 성찰하고 진리를 알고 자신을 찾기 원하는 사람들의 로망이 되었다고 한다.순례자들이 지나는 이 길에 불교문화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9만여평의 부지에 법당, 부도탑, 정원, 불교유물 전시관이 들어서고 40미터의 대형불상이 들어선다고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적지에 불교 시설을 추가해서 이곳을 세계인들의 영성 탐구의 장으로 만들겠다
전국이 ‘전염병’으로 인하여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를 하기에 한국교회도 교단과 중대형교회들은 ‘주일예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중형교회는 주일예배를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 설교하고 헌금은 계좌로 보내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예배인가를 논한다면 분명하게 절대 아니고 인본주의적 방법일 뿐이다.그런데 한국교회를 대표하고 대형교회의 원조인 어느 교회의 ‘대응방안’은 바람직하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현 상황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누구를 원망이나 비난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계기가 되고 기본적으로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이러한 이유는 전국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하지 않는 교회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최근에 주일 예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논쟁’인 것을 볼 수 있고 주일 예배를 하는 교회의 신자는 두려움과 고민을 하며 참여할 것이다.그런데 기사를 보니 대구에서 제일 큰 교회가 2주간 주일 예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 것에 대한 ‘반응’이 다양한데 어느 댓글이 매우 의미심장한 것을 볼 수 있
한국교회에서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좋아하는 교파는 ‘장로교회’이고 특히 ‘보수 장로교단’에 속한 자들이 더욱더 좋아하는데, 심각한 신학적 문제는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이해’를 위한 ‘정리’가 필요하므로 신학 용어로 ‘신경’과 ‘신조’가 맞는가에 관한 조직신학자 이신건의 말을 소개한다:“신경이냐 신조냐? ... (중략) ... 사도신경은 중국어의 使徒信經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경(經)은 종교의 경전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조(條)로 바꾸어야 한다(예: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등
페이스북에 보면 신학 서적을 읽고 내용을 올리거나 논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개혁주의’를 추구하는 신자들에게 많이 보이고 목사와 신학자들이 논한 신학 내용에 대해서 자신들의 수준에서 비판을 넘어 인격을 비난하는 것을 보게 된다.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가를 논한다면 ‘영적 교만’에서 나온 사탄적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현실은 이런 자들은 자신의 주관적 주장이 강하여 판단 능력이 매우 부족해서 권위가 있는 신학자들의 입장이나 글도 받아들이지 않고 판단하므로 ‘이단’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그래서 총신대의
어느 시골 지역의 ‘기독교연합회’는 신년 계획으로 ‘부활절 연합 예배’에 설교자를 ‘목사’가 아닌 ‘장로’를 세운다고 하여 어이없고 황당한 행동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독교연합회는 다른 지역의 연합회와 다르게 이상한 일을 한다. 연합회의 임원으로 ‘담임 목사’가 아닌 ‘장로’가 있는데, 장로란 결코 교회의 대표가 아니기에 임원이 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상식인데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를 가지고 행하는 사악한 행동이다.그렇다면 근본적인 질문인 “목사가 아닌 장로가 설교할 수 있는가?”를 논하면 절대로
예로부터 복장은 그 사람의 직업과 성향과 심지어 됨됨이까지도 보여 준다고 하였다. 그런데 장로교회 목사 중에 ‘복장’을 천주교회 신부들이 입는 ‘로만 칼라’를 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의 홈페이지에 사용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진보적인 장로교단(기장과 통합)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이는 진보적 장로교단이 신학적으로 ‘천주교회’와 연합하고 신학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것 중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이 ‘로만 칼라’를 하는 장로교회 목사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논한다면 중세교회의 부패와 타락에서 나온 장로
한국장로교회는 전 세계 교회에서 아주 드물게 엄청난 성장(한국개신교회 교세의 70% 정도)을 하여 장로교회를 대표하기에 자랑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신학 사상과 수준은 문제가 많고 특히 보수장로교단은 ‘개혁주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올바른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을 볼 수 있다.그래서 ‘정통적 칼빈주의(Orthodox Calvinism)’에 대해서 총 12회에 걸쳐서 연재하고 내용의 순서는 칼빈주의란 무엇이고 칼빈주의 오해로 개신교스콜라주의, 청교도주의(Puritanism), 극단적 칼빈주의(Hyper Calvinism)
“당시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 Deus lo vult'라는 말로 십자군전쟁을 제안하였으며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사후세계에서 받게 될 형벌을 면제해주는 면벌부를 내리는 등 전쟁에 앞장섰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교황의 말 한 마디에 서유럽 각지에서 잘 무장한 기사와 가난한 농민, 아직 앳된 소년, 심지어는 노인과 여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이다.”이러한 과거 기독교의 어두운 역사가 다시 한국개신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래 전부터 전도했던 지인은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고 있지만, 믿음은 전혀 없다. 몇 년 동안 교회에 다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질문에 묶여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왜 악한 자들이 잘살고 선한 자들이 고통 받는가? 하나님이 정말 계시고 능력이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신다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님을 잘 믿고 선한 자들을 복주고 믿지 않고 악한 자들을 벌주면 된다. 그렇게 간단한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왜 그
과거에 로마가톨릭은 오직 로마가톨릭에게만 구원이 있다면서 이교도들은 강제개종시키던가 아니면 살해했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암흑기가 되고 로마가톨릭에게는 전성기가 되었던 중세 천년 동안 세계대전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죽임당했다. 가톨릭 측에서는 5십만 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사가들은 5천만에서 1억 명으로 추정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에 확신적이던 로마가톨릭이 교리를 바꾸어 지금은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 현대 로마가톨
유대인은 정체가 드러나는 자료가 나오고 반유대주의 여론이 쏟아질 때마다 저들이 독점하다시피한 방송사와 출판사들을 통해서 이를 거짓 정보로 몰고 반박하는 내용을 퍼트리곤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항상 자신의 계획을 성공하고 그것을 덮을 수 있었다. 예수회의 전 사제 알베르토 리베라를 사기꾼으로 만든 것도 한 예가 된다. 그가 구체적인 증거자료들을 갖고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의 음모와 거짓말에 대해 밝혀나가자 한편에서는 그가 예수회의 사제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리베라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많은 자료들이 동일한 것을
세상은 권력과 돈으로 움직인다. 세상의 권력과 돈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은 유대인이다. 그들은 미국이나 독일에 살아도 미국인이나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살고 있다. 대중매체를 소유하고 제작하는 그들의 시각에서 우리는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해왔다. 우리는 유대인이 만들어준 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했고 그들이 제공해준 신문과 방송과 영화로 문화를 만들고 생각을 키워왔다.한국의 지식인 대부분도유대인에게 영향받았다. 마르크스, 촘스키, 마르쿠제, 루카치, 홉스봄, 포퍼, 마이제스, 그람시, 프롬, 노이만, 벤야민, 라캉, 레비스트로스,
교회에는 항상 각종 이단사상이 요란하게 들어왔다가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지금은 평화와 용납과 관용이라는 미명으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종교통합 사상이 들어와있다. 그런데 이것은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교회로 자리잡으려할 것이다.종교통합은 세상에 퍼져있는 뉴에이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교회는 뉴에이지로부터 관상기도를 배우면서 종교통합 사상도 용납하게 되었다. WCCM(세계크리스천 관상커뮤니티)의 디렉터인 로렌스 프리먼 신부는 "관상기도를 이끄는 궁극적인 목적은 ‘세계종교의 단일화’에 있다. 관상기도를 통해 세계평화, 세계단일화, 종교합일를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고대지혜라고도 불리는 뉴에이지는 오컬트밀교로서 소수의 특수집단이 추구하던 것이었는데,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