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예배와 집회에 ‘열성’을 가지기에 주일의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해서 평일의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구역모임 등으로 정말 공적 모임이 많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종교적 현상이 바람직한가를 반성하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칼빈주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주일에 행하는 예배의 순서에서 각 교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특징이 반영되고 있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개혁주의 교회들은 담임목사의 생각으로 ‘예배순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교회들이 추구해 온 예배순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그렇다면 개혁주의 예배순서의 필수는 ‘8가지’이고, 시작은 예배의 부름, 참회의 기도, 시편찬송, 성경봉독 후 설교(성경봉독 후에 성가대의 찬양은 안되고 사실상 16세기 교회개혁을 통해서 성가대는 사실
한국교회의 ‘교회교육’이 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온 역사적 배경에는 선교사들이 1905년에 ‘선교사공의회’를 조직하고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시작이 되었고 서울의 연동교회, 평양의 장대현교회 등의 여러 교회에서 ‘소아회(小兒會)’라 칭하고 교재로 ‘주일학교 공부’라는 책이 나왔다.그리고 주일학교위원회는 1911년에 세계주일학교연합회의 자문을 받고 조선주일학교연합회로 발전이 되면서 초대 회장으로 서로득(M.L. Swinhart)과 부회장에 윤치호 등으로 전국의 주일학교를 통솔하게 하였지만 선교사공의회가 사업을 진행하였다.그리고 1921년에 ‘제1회 전국주일학교대회’를 서울의 승동교회에서 개최하였을 때에 5천명의 신자들이 참여하였고 1922년부터는 선교사공의회에서 자립하여 연합체를
한국교회는 예배에 대한 ‘열성’이 강해서 주일이 아닌데도 예배라는 용어가 남발되어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그리고 심지어 새벽기도회를 예배라 하고 구역예배, 가정예배, 이사예배 등 다양한 예배들을 한다.그런데 과연 이러한 예배 용어의 남발이 바람직한가를 물어본다면 절대 아니고 사실상 이렇게 된 배경에는 ‘예배학’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원인이다. 즉 신학대학원에서 ‘예배학’을 전공자 또는 연구자가 아닌 비전공자가 가르치고 한 학기만 형식적으로 가르치기에 올바른 예배학에 대한 이해가 목사후보생들에게 결여된 현실이 가장 큰 문제다.그리고 이 문제는 예배 용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예배의 내용’에도 심각하게 문제를 보이는데 바로 ‘성찬식’을 매우 소홀하게 여기고 행하기에 ‘일년에 4번 정도’로 하는 교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설교에 있어서 ‘복음적 설교(사실상 주제설교 : 목사가 설교의 주제를 정하고 본문을 선택하는 설교)’를 중심으로 행해졌지만 10년 전부터는 ‘강해설교’가 유행하여 많은 목사들이 전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아직도 ‘자의적 해석’이 중심이 되기에 구약학자 김지찬도 비판하였다.그렇다면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올바른 성경해석이란 역사적으로 검증된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주석 방법으로 해야 하는데 구약학자 김지찬의 지적대로 주석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심지어 엉터리 주석을 보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고 심지어 강해설교자의 메시지를 들어도 아닐 때가 많다.그렇다면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한국교회가 바른 설교를 통하여 ‘바른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설교의 형태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와 다른 독특한 절기와 모임들이 있고 특히 해마다 7월의 첫 주일이 되면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데 이 절기는 사실상 한국교회만 행하는 것이다.그런데 개혁주의(사실상 칼빈주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는 이 절기가 과연 성경적이고 특히 개혁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보면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1901년의 제1회 장로회 공의회에서 ‘추수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채택하고 그 해의 11월 10일 주일에 지켰고 1906년부터는 두 종류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11월에는 공식적인 추수감사절 그리고 7월에는 비공식적인 추수감사절을 지킨 것이 나중에는 ‘맥추감사주일’로 불리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맥추감사주일’을 성경에서는 ‘맥추절’이고 원래 의미를 보면 자신의 밭에서 거둔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 중에서 공모임이 제일 많고 심지어 ‘새벽기도회’라는 독특한 신앙생활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 ‘기도원’도 만든 것에는 민족성이 가무(노래와 춤)와 더불어 종교성이 강해서 기도를 중시하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현상은 80년대부터 ‘영성’을 강조하면서 관련된 책들이 나왔고 각종 기도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그러나 바른 기도의 이해에 충실한 책들인지를 물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바르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시기다. 즉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은 강하지만 기도의 대상과 내용이 성경적인지를 검토하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 관점에서 평가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그래서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큐티식 기도’를 보면 개혁주의(칼빈주의)를 추
한국교회는 ‘사탄론’을 잘못 이해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적전쟁’을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능력대결’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과 사탄이 복싱처럼 같은 체급의 두 선수가 링 안에서 치고 막아 승부를 겨루는 운동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칼빈주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짓신학이다.그 이유는 다른 신학들보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Lordship)’을 강조하기에 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이고 하나님의 허락으로만 일할 수 있고 결국에는 멸망한다는 것이 성경에서 전하는 내용이고 대표적으로 욥기와 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다.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사탄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에 한국의 수많은 개혁주의교회가 속고 있는데 바로 ‘천사타락설’로
한국교회가 전 세계교회와 다른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적을 거라 본다. 즉 무엇이 다른 신앙고백인가하면 ‘사도신조’에서 전 세계교회에서 유일하게 내용 중 삭제된 부분이 있는데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사도신조에서 삭제된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음부에 내려가셨으며(descendit ad inferna)”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신학적 표현이기에 칼뱅은 자신의 기독교강요(2권 16장 8절)에서 다음과 같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속을 실현하기 위해서 적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고대 저술가들의 글을 보면, 사도신조에 있는 이 어귀가 교회에서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은 때도 있
한국교회는 전도나 선교에 있어 매우 열정적이라 선교는 ‘세계 2위’이고 전도는 최봉석 목사부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인 노방전도의 인기와 대중 전도 집회 그리고 군선교(훈련소의 진중세례식) 그리고 사영리 및 각종 전도 프로그램 등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그러나 이러한 전도 방법들을 개혁주의 교회도 받아들어 왔지만 이제는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할 시기이다. 즉 이러한 전도 방법들이 사실은 ‘복음주의’나 ‘알미니안주의’가 신학적 배경이고 ‘인본적 방법’이 아닌지를 물어야 한다.미국의 풀러신학대학원 교회성장학 교수로 유명했던 피터 와그너는 ‘복음전도의 3가지 접근방식’으로 현존, 선포, 설득전도를 주장했는데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전도는 주로 ‘선포’이고 10년 전부터는
한국교회가 장례에 있어서 전통적인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한 이유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2014년 3월 통계를 보면 77.3%).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정통적인 기독교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 개혁주의 교회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화장이 정통적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에 전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구약학자 김정우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모든 신앙의 선진들이 그들 열조의 묘실에 매장되었다. 매장 제도는 신약시대의 관습이기도 하였으며 여러 역사적인 문헌과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살펴볼 때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비록 부활의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화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적인 조상제사가 제거되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기능적 대치’로 추도예배를 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교파를 초월해서 사실상 한국의 다수의 교회들이 명절과 기일에 추도예배를 행하고 있다.그렇다면 한국교회 역사에서 어떻게 추도예배가 자리를 잡았는지를 보면 1897년 ‘조선 그리스도인 화보 9월호’에서 최초로 추도예배를 한 자는 이무영이라는 정동감리교회 신자로 모친 기일이 되자 고민하다가 착안해서 하였다는 이 기사를 보고 이 교회의 다른 신자들도 한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1934년 감리교회 총회에서 추도예배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부모님 기일 기념 예문을 만든 것이다.이러한 추도예배는 1950년대에 성결교회가 하고 1970년대말에 장로교회도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에는 한국교회의 90% 이상
한국교회는 찬양을 정말 좋아하는데 민족성이 가무(노래와 춤)를 좋아하는 문화적 배경으로 인하여 찬양사역자들이 많고 찬양 집회에 수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고 교역자 청빙에도 악기 사용과 찬양인도를 요구한다. 이러한 한국교회는 성가대를 조직해서 세우거나 찬양단을 조직하여 주일예배 시작 전에 찬양을 하여 분위기를 만들고 예배에서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 대형교회는 급여를 받고 악기를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있다.그리고 찬양 집회로 성장한 교회가 많아서 교회성장의 방법으로 찬양을 중요시하고 찬양사역자들은 예배자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찬양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하는 찬양이 정말로 성경적이고 교회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의 교회 안에서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에서 매우 드물게 교파적으로 장로교회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주일 예배의 순서에서 축도가 루터나 칼뱅이 행하고 루터교회와 유럽의 개혁교회들이 사용하는 ‘아론의 축도(민 6:24-26)’가 아닌 미국 침례교회와 미국 장로교회의 일부에서 사용하는 ‘바울의 축도(고후 13:13)’가 한국에 들어 온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서 사용했기에 안타깝게 아론의 축도를 사용하면 신자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현상이 생겼다.그런데 과연 개혁주의 교회에서 아론의 축도가 아닌 바울의 축도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적 사고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 이유는 바울의 축도의 본문이 사실상 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한국교회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본문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와 색다른 신앙생활의 규범(regula fidei)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십일조와 새벽기도회다. 그래서 공적 모임으로 주일부터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고 중시하여 직분 임명에도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넘어서 새벽기도회를 보기도 한다.그런데 신앙적 사고로 생각해 볼 것이 새벽기도회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즉 과거의 농경사회에서 새벽기도회가 필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사회에서 사실상 새벽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새벽기도회 출석률은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세례신자들 중에 매우 적은 수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비판적으로 보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여러 모임들이 많고 새해를 맞이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교회도 새해를 맞이하여 준비하는 것 중에서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이 바로 ‘송구영신예배’다. 그런데 이러한 예배가 과연 성경적이고 개혁주의 전통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목사와 신자들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이러한 현실에서 문제 제기를 한 조직신학자 이승구 교수는 몇 년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서 송구영신예배에서 행하는 “말씀 뽑기는 반기독교적”이고 ‘뽑기 방식’의 문제에 대해 “한 구절만을 뽑아 생각하는 것은 성경 문맥을 단절시키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성경은 항상 그 문맥 속에서 읽어야 바로 해석할 수 있다”와 “점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기에 사실 거기에서 유래했다고도 할 수 있고, 꼭 그렇지
해마다 12월 25일이 되면 교회들은 제일 바쁘다. 그 이유는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여 성극도 하고, 선물 나누기도 하고, 각 기관마다 찬양도 하고, 새벽송도 하고, 이웃초청도 하고, 성찬식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념하는 축하를 한다.그런데 과연 이러한 성탄절 행사와 더불어 성탄절에 예배를 하는 것이 개혁주의 교회에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목사와 신자들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우선적으로 성탄절의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한데 원래 성탄절은 기독교의 절기가 아닌 것으로 우리가 지키는 12월 25일은 사실상 주후 336년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생일을 성탄절로 정하여 지켰던 것을 이교적 요소를 제거하여 375년에 안디옥교회와 5세기에 알렉산드리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