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서 ‘독단’은 용납되지만, 학술지에서 ‘독단’은 합당하지 않다. 김세윤 교수의 는 강의를 저술로 만든 형태이다. 그렇지만 신학 저술로 베스트셀러의 위용을 자랑한다. ‘명쾌한 신학 강의’라고 홍보한다. 학문은 명쾌할 수 없다. 명쾌한 것은 연설에서 가능하다.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전개하며 독단이 허용한 강의를 출판한 학술 저술이다. 저자의 독단을 기쁘게 수용하면 명쾌한 내용이 될 것이고, 저자의 독단에 의심과 거부가 발생하면 답답하고 무서운 저술이 될 것이다. 학문의 설득은 웅변에 있지 않고 논리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합리적으로 설득을 줄 수 있는 논리는 없다.김세윤의 견해도 새관점학파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우수 신학자이기 때문에 한국
김세윤 교수의 저술 1)은 The Son of Man as the Son of God, Mohr, 1980의 번역본이다(‘김인자’로 약칭하겠다). 김세윤은 The Origin of Paul’s Gospel, Mohr, 1981. 박사논문을 출판한 뒤에 1984년 2차 개정판을 냈다. 한국에서 출간한 2)은 2차 개정판에서 번역했다. 필자는 김세윤 신학의 핵심이 두 권의 저서에 있다고 보았다. 김세윤은 를 1981년에 한국에 소개하였는데, 한국 교회의 지성을 위한 기초 핵심 도서로 평가받은 스테디셀러이다. 김세윤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1981년 돌아 와서 박사논문을 직접 소개하지 않았다. 자기 사상을 매우 쉽게 정리에서 한국 교회에 소
에타 린네만1)이 루돌프 불트만으로부터 신학을 처음 배울 때, 불트만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접어두고 신약과 과학 연구에 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불트만은 20세기 성경 비평을 통해 교회역사 전체를 흔들어 버린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에타 린네만은 자신이 배운 신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자신의 책2)을 통해 분명하게 말했다.불트만의 성경 비평학은 한마디로 말해 성경을 역사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하고, 모든 기독교 역사를 왜곡시키는 사탄의 도구라고 고발한다. 에타 린네만은 성경 비평학이 어떻게 성경을 왜곡시켰는지, 불트만의 신학전제를 비판하였다. 그녀가 말하는 불트만의 신학전제는 다음과 같다.‘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
최덕성 박사는 2015년 김세윤 교수의 칭의 이해를 ‘유보적 칭의론’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종교개혁의 칭의 이해를 배격하며 거부한 이론으로 규정했다. 최 박사는 김세윤의 (서울: 두란노, 2013)을 읽고 비평했다. 는 김 교수의 체계적인 신학 저술은 아니다. 김 교수의 많은 저술들은 강연을 통해서 발표한 것을 두란노 출판사와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출판한 저술들이 많다. 이러한 저술은 학문적으로 높은 가치를 주기는 어렵다. 김세윤 교수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학자이겠지만, 한국에서 출판한 많은 저술들은 한국용이라고 볼 수 있다. 탁월한 강의이지만 학자의 저술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먼저 김 교수는 전통적인 칭의론을 형벌을 수반한 대신적 속죄 행위(pen
“세레 요한이 펼친 하나님의 나라 운동보다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개념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결국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 이름없는 촌부가 이런 주장을 한다면, 우리는 마치 지나가는 술주정뱅이가 하는 소리 정도로 여기고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라고 추앙되고 있는 김세윤 교수가 이런 말을 예사로이 하고 있다. 김세윤 교수는 자신의 책 에서 이렇게 주장한다.“원래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이끄는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복음서에서 모두 그 흔적을 볼 수 있는데, 특별히 요한복음
요즘 김세윤 박사의 칭의신학에 대해 개혁신학 진영의 예리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김세윤 박사가 최근 동부지역에서 목회자들에게 강의한 약 한시간 분량의 영상을 들어보았다. 영상에서 김세윤 박사는 노골적으로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으나, 기독교 신자들이 처음 믿음을 가질 때 그리스도의 대속 제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칭의가 끝까지 유지되어 확실하게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릇되었다는 식으로 강의했다. 김세윤 박사는 그런 유형의 칭의에 대한 가르침의 부작용으로 인해 이미 한국 교회에 열매없는 죽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만연했다고 하였고, 그 근본적인 문제는 바울의 성경의 여러 곳에 표현되어 있는 경고, 즉 구원으로부터 신자들이 탈락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흔히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칼 바르트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2,000년 동안 지켜온 기독교의 순수한 교리를 자신의 신학으로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또한 그를 추종하는 신학자들과 교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신학적 언어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언어와 형식에 있어서는 같을지 몰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분명 전제가 틀리다. 바르트의 신학을 언급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조금도 오류가 없다는 기독교 역사적 견해를 교리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성경에 대한 바르트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이외의 다른 근원을 통해서 사람에게 올 수 있으며, 기타의 종교적 문헌과 전연 종교적이 아닌 문헌도 하나님의 말씀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이 최근 '바울을 만나러 간다'라는 주제로 공개강좌와 좌담회를 개최하고 소위 '김세윤 신학'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전주 상관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됐다. 풀러신학교 김세윤 교수는 저서 출간에 즈음해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방한했고, 강연을 통해 "칭의의 온전한 수확은 종말에 유보돼 있다", "칭의와 윤리(성화)는 하나의 통합체로서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쳐 화제가 됐다.지난해 10월 소망교회에서 김세윤 교수는 '사도 바울의 복음'을 주제로 "칭의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나님나라)의 틀 안에서 이해돼야 바울의 복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칭의는 '이미 이루어짐-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음'의 구조 속에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뜨거운 논쟁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죄인이 의인되는 신학적 논의다. 정통신학은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이신칭의가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신칭의가 종교개혁의 산물인지? 아니면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 주장을 후대의 신학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한번쯤 다시 뒤돌아 볼 필요가 반드시 있다.오늘날 현대신학은 정통교회의 이신칭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가(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하는 지적에서 거듭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칭의와 성도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현대신학이 계속 칭의를 논하면서 루터와 칼빈식의 칭의론이 바울이 가르쳤던 칭의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 대표자가 김세윤 교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