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은 Gertrude Huehns의 견해를 따라서, 반율법주의는 낮은 칼빈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반동으로 1640년대 영국에서 발생했다고 제시했다(김재성: 2003, 391). 반율법주의 교설(敎說)은 교회사에서 정통 교리를 거역하는 정형화된 이설(異說)이다. 반율법주의는 무율법주의, 방종주의 등으로 말할 수 있다. 루터와 아그리콜라 논쟁(Johann Agricola, 1494-1566)이 있고(율법폐기론), 칼빈 시대에 리베르땅(Libertines) 혹은 자유주의로 불리는 방종주의가 있다. 루터는 1539년 (Against the Antinomuans)에서 반율법주의를 명백하게 거부했고, 아그리콜라는 루터의 권면을 따라 율법폐기론을 철회했다.그런데 제네바에서 방종주의는 세르베
박근혜 정부 당시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심각한 반대가 있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역사를 주도하려는 것에 대한 부당성이었다. 역사의식은 국민이 갖아야 할 필수적인 공동의식이다. 그것을 정부가 주도하여 확립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당시 야당은 그러한 사고 체계를 심각하게 거부했다.그런데 그 당시 야당이던 사람들이 정권을 획득한 후 동일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법률로 국민을 계도하려는 자세가 드러나고 있다. 동성애 문제에서도 정부가 주도하려는 자세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야당은 국가 주도적 경제정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자세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으로 과도한 국가주도 정책과 법률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
1. 아담의 죄와 관련을 부인하는 견해아담의 죄와 인류의 죄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신학들이 등장했다. 펠라기우스주의, 소시니안, 반펠라기우스주의, 신(新)학파(New School, New Heaven theology) 이론, 칼 바르트의 위기신학 등이 아담의 죄와 인류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벌코프: 1994, 458-459). 그러나 아담의 실재성(historical Adam)에 대해서 부인하면 원죄에 대한 논의에 대한 근원 문제가 상실된다.박형룡 박사는 신학파가 바빙크의 사상과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1757년에 휘트비에 대항하여 자신의 유명한 논문, 『원죄 변호』를 저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이미 간접적인 죄의 전가를 신봉했고, 홉킨스, J. 에드워
1. 잉글랜드 종교개혁: 헨리8세 ~ 엘리자베스 1세 (수장령과 39개 조항)잉글랜드 종교개혁은 튜더왕조(House of Tudor)에서 시작했다. 1509년에 즉위한 헨리 8세(Henry Ⅷ, 1509-1547)가 부인 문제로 교황권과 대립함으로 발생했다. 헨리는 1531년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534-1536년 천일왕비), 1533년 앤 볼린(Anne Boleyn)과 혼인하였다.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인데, 단순한 애정 문제와 교황권에서 분리하기 위한 명목으로 애정 문제를 삼았다는 것이다.헨리 8세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대표임을 공표하는 수장령(the act of supremacy, 1534)을 공포했다. 이것은 기존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 로마 교회를
구원을 설명할 때 타인의 견해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한 구원론 강의에서 자기 구원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훈련을 한 적이 있다. 먼저 강의하는 필자의 구원에 대해서 간략하게 제시하면서, 강의 참석자들이 구원 과정(구원 서정)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었다.그 훈련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타인의 구원 설명을 답습하지 않았고, 자기 구원에 대해서 자기 신학과 경험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시도했다고 본다. 자기 구원 과정을 몸소 경험한 사람은 루터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인 것은 구원 과정(구원 서정)이 같은 유일한 사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부패된 교회에서 나오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칼빈은 조용하게 탐구하려다가 제네바에서 개혁교회를 이루기도 했다. 믿음의 선진들의 시행
성경에서 언약은 창세기 6:18에서 노아와 맺은 언약에 최초로 등장한다. 개혁파는 창세기 1장에서 무죄 상태인 아담에게 주신 명령을 언약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노아 언약이 새로운 생활 체계를 이루는 구조이다.아담 언약은 첫 언약이고 실패한 언약이다. 실패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이다. 이 때 죄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다. 죄는 언약을 깨드리는 것인데, 언약을 깨는 것은 반역이다. 범법은 언약이 유지되지만 반역은 언약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반역을 범하면 반역자는 그 땅에서 살 수 없이 3족을 멸하는 것이 왕권의 위계이다.첫 상태에서 죄는 정녕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창 2:17). 아담은 반역했고 하나님은 반역한 아담을 즉결 처분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회복 방안을 선언하셨다(창 3:15
‘방언(方言)’은 표준어로 사투리, 즉 지방어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여러 의미로 신학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단수형(글롯사)과 복수형(글롯사이)으로 등장한다. 이창모 목사는 복수형이기 때문에 다양한 외국어로 이해했다. 방언은 1세기 예루살렘과 고린도에서 발생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이창모 목사는 고전 14:14-15절에서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했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린도전서 이후로 방언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창모 목사는 몬타누스파들이 방언했다는 견해를, 몬타누스의 추종자인 프르스길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가 키벨레(Cyblele) 신전에서 이상한 노래로 흥분시키는 방법을 도입한 것으로 제시했다.
신학, 학문을 진행할 때에 사고 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체계가 없을 때에는 많은 혼란을 양산할 것이다. “체계 없는 사고 체계”에서 나오는 산물은 반드시 혼란을 선물로 제공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완전한 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인간에서 나온 산물은 위험하다(마 15:11). 그럼에도 인간에서 나온 산물로 인류는 유지되었고, 유지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갖는 부조리의 원인이며, 인간미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은 체계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한다. 기존에 사용하는 어휘 개념을 이해하며 사용하는 것이고, 자기 개념을 자기-어휘로 개념화하는 것이다. 학생은 기존 어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선생은 자기-어휘 개념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3권, 47장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사역(그리스도의 비하)을 정리하고 있다. 바빙크가 사용하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살피기 위함이다. 바빙크는 그리스도 속죄 교리, 속죄제사(희생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빙크가 속죄 교리를 부정하는 형태로서 소시누스파를 심각하게 여겼음을 보고 있다.소시누스 파의 중심인물을 삼촌과 조카 사이였던 두 사람(Laelius(1525-1563) and Faustus (1539-1604)이었는데, 두 사람은 로마 교회를 떠나 방랑하면서 개혁파들과 토론을 즐겨했다. 삼위일체를 부인했고 조카는 Unitarianism을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정한 대표적인 위인들이다. 1597년 폴란드로 이주해서 1605년 라코비안 요리문답(Racovi
1646년에 작성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하 ‘웨민고백서’)는 잉글랜드 의회파가 주도했고, 스코틀랜드 장로파가 업저버로 참석하여 형성한 신앙 표준 문서이다. 1658년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은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가했던 회중주의자들이 후에 별도로 런던의 사보이 궁에서 모여 작성한 선언문이다.회중 제도를 추구하는 원로(Elder)들은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예레미야 버로우(Jeremiah Burroughs, 1600-1646), 필립 나이(Philip Nye, 1595-1672), 시드락 심슨(Sydrach Simpson, 1600-1655),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
바빙크는 종교개혁에서 확립한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가 점차 신비적, 윤리적 혹은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우려하며,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바빙크는 1800년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대속 교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신비적, 윤리적,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제시했다(439쪽).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측에서 죄의 속죄 교리가 복음의 한 요소가 아니라, 바울에 의해서 첨가되었다고 주장했다(440쪽). 그러나 바빙크는 예수의 대리적 고난과 죽음에 대한 고백을 강조했다(440쪽).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기독교 고백의 심장과 핵심으로 제시했다(441쪽). 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고 주장했다(441쪽). 이것은 비밀 그리스
서철원 박사는 바빙크 신학이 사변이 있다고 했다. 바빙크는 20세기 대표적인 칼빈파 신학자이다. 바빙크 이후에 진행된 칼빈파 신학은 바빙크보다 더 사변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의 석학은 사변으로 경도하는 개혁파 신학에 대해서 주의를 경고했다. 한국 개혁파는 세계 개혁파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국 개혁파가 바르게 선다면 세계 개혁파가 루터와 칼빈에 입각한 종교개혁 사상을 풍성하게 형성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서 박사의 견해를 따르면 바빙크의 신학보다 더 사색적이지 않고, 성경과 교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다. 필자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비하 사역과 승귀 사역으로 구분했다. 47장이 “그
우리는 2016년에 김세윤 교수의 신학에 대해서 많은 탐구를 했다. 그 결과를 2017년에 (CLC)을 출판했다. 이 신학담론의 장을 위해 (대표 정이철 목사)을 활용했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 이해를 “유보적 칭의”라고 최덕성 박사께서 정립하면서, 한국 교회는 유보적 칭의와 구원의 탈락 가능성에 대한 담론으로 뜨거웠다. 이제 우리는 김세윤의 칭의를 “유보적 칭의”라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칭의’에서 ‘의’라는 개념 이해로 논의가 확장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라는 개념이 있고, 루터의 개념인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남은 죄’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신
1>손성은 목사가 지난 해 6월에 SNS에서(facebook.com)에 서철원 박사의 신학 사상에 대해 게시한 글에 75개 정도 댓글이 달리면서 많은 호응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정이철 목사가 을 통하여 손성은 목사의 글에 대한 답변을 게시했다.2>손성은 목사가 포스팅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바른믿음의 글을 재인용).“한국교회의 그 유명한 신학자, 그것도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강조한다는 한 신학자의 말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한국교회만 아니라 2천년 세계교회가 깨닫지 못하였고, 칼빈의 신학도, 청교도의 신학도 자신
필자는 신동식 목사의 권유와 인도로 출판사 우리시대에서 「영분별을 위한 신학좌표」를 처음 출판했었다(2017년). “신학좌표”라는 말은 지금도 생소한 것 같다. 그러나 신학하는 사람, 신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신학좌표(神學座標, theological latitude, theology coordinate), theological latitude를 구글에 검색하니 GPS을 근거로 신학교 위치가 나왔다. theological latitude, theology latitude는 외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인 것 같다. 신학좌표는 문자의 의미대로 “신학에 어떤 포인트 위에 신학하는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이다. GPS는 위도(緯度, latitude)와 경도(經度, lo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다르다. 정통신학에서는 온전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니케아 신조(325)와 칼시돈 정의(451)를 따라서, 예수님은 가장 온전한 신성을 지닌 분이시면서 가장 온전한 인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따라서 정통신학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와 상관된 것이 조금도 없고, 죄를 전혀 범치 않으셨고, 인간의 구속을 이루시고, 구속된 사람들이 살아갈 바른 길을 제시하셨다고 그를 믿는다. 이에 반해서, 퀴어 신학에서 어떤 분들은 예수님 자신이 동성애적 정향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분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다 받아들이시는 분이시니 동성애적 정향을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하고, 그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것
1. 들어가는 말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누구인가? 정이철 목사가 에드워즈 자신의 신비적 체험과 부인 사라의 신비적 체험 등을 기점으로 꾸준하게 비평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이철 목사 외에도 상당히 저명한 많은 연구자들이 에드워즈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비평의 내용들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에드워즈에 대해서 높은 평가가 있는 반면에 매우 심각한 비평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드워즈를 비평한 학자들은 우리가 신학을 높이 평가하는 위인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구속사」라는 저술이 있다. 에드워즈가 노샘프턴(Northampton) 교회에서 1739년에 6개월 동안 설교한 30편의 원고를 그의 사후에 스코틀랜드의 존 어스킨(John Erskine, 1721-1803)이『구속 사역의 역사』(1774년)라는 명칭으로 출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김귀탁이 번역하여 부흥과개혁사에서 「구속사」(2015년)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우리나라의 신학교에서 구속사적 성경 해석은 상당히 중요하고 관심을 받는 주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드니 그레이누스(Sidney Greidanus) 혹은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 1902-1999)을 통해 많은 신학생들이 그것을 접했다. 게할더스 보스(Ge
1990년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소위 퀴어 신학은 비교적 근자에 나타난 신학적 논의로서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아주 극단적으로 여성신학적이고, 포스트모던적 해체주의적인 신학적 활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살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잘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퀴어신학은 정통적 기독교의 주장과 정통적 기독교 신학과는 그야말로 대체적인 입장에서 신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는 기존의 기독교와 기존의 기독교 신학을 대체하려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정통적 기독교와 정통신학에 대립하여 서는 주장인 것이다. 퀴어 신학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신학은 “백인적이고, 남성적이며, 유럽적이고, 이성애적인 신학”이라고 한다. 즉, 전통적 신
정이철 목사의 “에드워즈를 세우고 예수가 손해보게 하는 연구 그만해야 한다”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기사에서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참 부흥과 거짓 부흥의 차이필자는 사도행전의 참 부흥과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귀의 거짓 부흥의 차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1.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선포하는 이적들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역사 속의 많은 거짓 부흥운동은 대부분 이미 신앙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