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에 아담의 중립적 창조를 믿는 교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 될일입니다. 아담이 중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기독교의 창조 신학을 성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심각한 일 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거짓 이론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1) 아담은 죄를 범하지 않아도 얼마 후에 죽을 사람으로 창조되었다.2) 아담은 스스로 노력하여 생명을 얻을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 기간 안에서 창조되었다.3) 아담과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분이었다.4)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범죄로 죽음이 왔다는 성경 말씀은 거짓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23년 108회 합동 총회는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는 합동 교단의 인물들에게 22년 총회의 명백한 교류금지 결의를 무시하며 면죄부를 주었다. 회심준비론에 대한 신학부의 보고 내용은 전후좌우, 앞뒤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이었다. 문제가 되는 청교도주의 회심준비론이 무엇을 주장하는 이론인지, 실제로 합동의 그 인물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회심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일어난다. 회심은 그 어떤 방도로도 인간이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이다.”“목회현
(이번 주 갈라디아서 본문 강해 설교를 준비하다 함께 읽으면 좋을 내용이겠다 싶어 그 부분을 조금 바꾸어 올립니다.)바리새파 유대교는 각 사람이 자기의 율법 준수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믿는 율법주의 이단 종교였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칭의를 얻고, 또 율법을 지켜서 얻은 구원을 계속 유지한다고 믿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경을 크게 대적하는 율법주의라는 이단 사상입니다.지난 주에 제가 어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카나다 개혁교회의 웨스 브레덴호프라는 신학자가 쓴 “Feder
- 임진남 목사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한국사회가 중화사상에 물들어 거의 2,000여년 동안 불교, 유교, 선이라고 하는 계급과 신분제도에 의해 변화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서 찾아 볼수 없는 위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기독교가 조선에 들어온 이후 구한말을 지나, 6.25 전쟁을 거쳐 그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축을 이루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근대화에 성공이라고 하는 열망은 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아주 딱 맞게 강단에서 목사들의 설교로 전파되고 가르쳐 지면서 교회의 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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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는 영국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그리고 뉴 잉글랜드(현재의 미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회중교회 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Lloyd-Jones 2016, 255: Jeong 2021, 135, 155, 184). 제네바로 망명하여 칼빈에게서 신학을 배운 후 장로교회 설립을 위한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Knox와 달리 퍼킨스는 칼빈의 책들 보다는 베자와 우르시누스의 책들을 통해 신학을 더 많이 배웠다 (Beeke & Jones 2012, 120). 스콜라주의를
영국 교회가 시들어가고 있을 때 놀라운 부흥을 가져온 찰스 스펄전, 생기 없이 죽어 가고 있던 유럽의 정통주의 신앙에 영적 활기를 가져왔던 리차드 백스터,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의 물결 가운데 타락과 방탕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영국 사회를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했던 잔 웨슬리, 영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수많은 심령들에게 불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던 조지 휘필드 등을 연구하면 가슴이 뜨거워짐을 경험한다. 17-19세기 위대한 설교가들에 대한 강의를 듣던 한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타고난 자질을 갖춘
질문>회심준비론을 교류금지하게 된 이유를 쉽고 짧게 설명하여 주세여~!답변>회심준비란 사람이 구원을 받기 전에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염려하고 준비한다는 사상입니다. 성령의 은혜의 역사와 주권으로 그리한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그리한다고 하니 성경적 장로교 개혁신학의 가르침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준비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 기독교에, 장로교에 없습니다.장로교와 성경이 인정하는 구원에 대한 성령의 역사는 택하심 받은 불신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려서 믿게되는 역사뿐입니다. 영혼이 죽은
성경 말씀으로 모였다고 해도, 예수 이름을 선포하고 기도한다고 해도, 탑을 쌓게 되면 그것은 바벨탑이다. 나쁜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인 모임이 아니고 좋은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해도, 탑을 쌓게 되면 그건 바벨탑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위에서 군림하는 모양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7장 1-2절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이 글은 다른 목적의 긴 글의 일부이므로 목적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이 교단의 신학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초기의 신학자는 박형룡 (1897~1978)이다. 박형룡은 미국의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과정을, 미국의 The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1927년에 귀국하여 1953년부터 이 교단이 운영하는 신학교의 학장으로 일하였다 ("박형룡", EKC). 박형룡은 루이스
1912년에 공식 창립된 이 교단의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본 교단은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근본 신앙으로 하여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을 교리적 표준으로 삼고, 장로교 헌법의 정치원리를 가지며 교회의 전통과 권위 및 질서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GAPCK (hapdong) 2024, Introduction to the General Assembly).이 교단은 1872년 인도 장로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요약하여 작
SB Y님의 질문>목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구약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성화되게 하는 능력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지는 않았습니까? 구약시대 백성들에게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믿게하는 마음은 은혜로 주셨는데, 반면 백성들이 성화의 마음을 주실 수 없어서 율법을 지키게 하신 건가요? 믿는 마음을 주시는 것도 구약의 하나님의 성신이 함께 동행해서 그렇다고 생각되는데, 그 은혜에 성화는 포함되지 않고 따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
1994년 미국 복음주의 교회와 로마카톨릭 간에 공동협의서가 만들어졌다. 이를 ECT 협의서라고 한다 ("Evangelical and Catholic's Together").이 협의서의 결과 개신교회 십자가 위에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구세주라는 의미의 M 자 휘장을 걸도록 합의를 했고, 현재 많은 교회들이 이런 모습의 휘장을 십자가 위에 걸어 놓고 있다.그냥 밋밋한 십자가보다도 휘장을 걸어 놓으면 멋지게 보여서 십자가 위의 화려한 장식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의미를 알고 보면 사탄의 계획이 있슴을 깨달을 수 있
영국의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두 사람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은 선구자이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존 낙스이다. 또 한 사람은 잉글랜드 청교도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엄 퍼킨스이다 (Kim 2020, 221; Won 2018, 45).낙스와 베자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스코틀랜드 태생인 Knox는 핍박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했을 때 제네바의 칼빈에게 찾아갔고, 그는 거기서 칼빈과 함께 머무르면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배웠다
우르시누스에게 표현이 조금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135번에서도 확인된다.“135 Q: Why is it necessary that the satisfaction and righteousness of Christ be credited to us in order for us to be righteous before God?A: Because God, who is always just and true, wants to receive us into his covenant of grac
다음은 22년 107회 합동 총회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해 21년 106회 총회의 결의를 계승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의 녹화 영상이다. “이대위 서기 김선웅 목사의 보고 :첫번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 관련의 건.제 106회 총회의 결의를 유지하고 소속 교단 합신에 질의했으며, 새로운 논쟁은 차기 신학부로 넘겨 연구토록 하다.총회장(사회자) : 어떻게 할까요?총대들 : 보고대로 받지요.총회장(사회자) : 예! 보고대로 받기로 허락입니까?총대들 : 보고대로 받지요.총회장(사회자) : 예! 허락입니까?총대들 : 허락합니다!총회
(1561-1562), (1561-1562), (1563)을 저술한 우르시누스도 (Zacharias Ursinus, 1534~1583) 베자와 함께 중세의 스콜라주의를 개신교 신학에 도입한 선구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Letham 2009, 101). 개신교 스콜라주의의 선구자 베자가 칭의의 원리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설명한 것처럼 우르시누스 역시 그렇게 칭의를 설명했었을까? 1561년에 우르시누스가 작성한 36번을 보면, 그에게 표현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