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그리스도인들의 바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헬라어 원문을 읽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바르게 번역된 성경의 중요성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예배에 사용하며, 또 가장 많이 읽고 있는 한글 개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 성경의 번역은 부분적이기는 하나 원문과 거리가 먼 엉터리 번역들이 꽤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물론 번역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얼토당토 않는 오역(誤譯)이나 거의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는 수준의 악역(惡譯)은 지향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면에서 새 번역,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이 한글 개역 성경이나 개역 개정 성경보다는
한국교회가 장례에 있어서 전통적인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한 이유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2014년 3월 통계를 보면 77.3%).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정통적인 기독교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 개혁주의 교회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화장이 정통적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에 전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구약학자 김정우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모든 신앙의 선진들이 그들 열조의 묘실에 매장되었다. 매장 제도는 신약시대의 관습이기도 하였으며 여러 역사적인 문헌과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살펴볼 때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비록 부활의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화
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독특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중에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데리고 나올 때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주님 당신에게 나오는 것을 허락하시고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 주님의 이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현대 신학 가운데 실용주의 신학은 어린 아이들이 갖고 있는 믿음은 지식적이지 않고 단지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 그 바탕을 둔다고 가르친다. 물론 너무 어린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손길에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자신의 지각을 가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짐승이 로마교황청이라는 해석은 신학자들 간에 계속 주장되어 왔다. 찰스 스펄전 목사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아니라면 적그리스도라고 불릴 만한 것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고, 존 칼빈은 “다니엘과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에 적그리스도가 앉으리라고 예언했다. 우리가 보기에 저 사악하고 가증스런 왕국의 수령과 기수는 로마교황이다”고 말했다. 요한계시록에 의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용이 주는 권세다니엘의 예언에 나타나는 4개 제국은 바벨론, 페르샤, 헬라, 로마다. 로마가 몰락하면서 그 뒤를 잇는 세력이 바로 중세기를 지배했던 로마교황이다. AD 538년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교회의 감독인 유세비우스를 온 세계의 교회의 머리로 임명했다. 성경은 기독교를 극심하게
최근 우리는 개혁신학에 대한 상반된 논의를 대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신학의 정당성을 해명하고, 바른 신학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당사자 간의 토론과 대화의 모습은 사라지고 개인의 페이스북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아주 저질스러운 모습들을 본다.사실 필자는 정이철 목사와 노승수 목사의 신학적 견해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에서 서로 화해권면을 시도하였다. 우선 정이철 목사에게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기사를 내려줄 것을 부탁하였고, 정이철 목사는 좋은 의도로 받아주었다.그런데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기사가 내려가자마자 노 목사는 개인 페이스 북에서 정이철 목사가 기사를 내린 것에 대하여 조롱과 조소를 하면서 법적조치를 계속한다고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말한 것을 어떤 분이 캡쳐하여 보내주었다
Massachusetts에 정착한 청교도 1세들은 회중중심의 교회를 운영하면서 가견교회(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불완전한 교회)를 불가견교회(눈에 보이지 않는 완성된 천상의 교회)로 접근 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그들은 교회회원의 자격을 엄격하게 높이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구원 얻는 믿음’을 확인하려고 하였다.요한 칼빈은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아닌지, 구원 받기로 작정된 자인지 아닌지 이 세상에서 확실히 아는 것은 불가능함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구원 여부에 대해 알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성화가 구원 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가견교회가 그 회원을 받을 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표시를 확인해야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적인 조상제사가 제거되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기능적 대치’로 추도예배를 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교파를 초월해서 사실상 한국의 다수의 교회들이 명절과 기일에 추도예배를 행하고 있다.그렇다면 한국교회 역사에서 어떻게 추도예배가 자리를 잡았는지를 보면 1897년 ‘조선 그리스도인 화보 9월호’에서 최초로 추도예배를 한 자는 이무영이라는 정동감리교회 신자로 모친 기일이 되자 고민하다가 착안해서 하였다는 이 기사를 보고 이 교회의 다른 신자들도 한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1934년 감리교회 총회에서 추도예배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부모님 기일 기념 예문을 만든 것이다.이러한 추도예배는 1950년대에 성결교회가 하고 1970년대말에 장로교회도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에는 한국교회의 90% 이상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선지자들에게 보여 주시며 성경에 기록케 하셨다. 예언들은 특히 이스라엘과 주변국가와 인물들에 대한 것인데 예외없이 모두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이제 우 리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마지막 시대의 일들이 성취될 것만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성취될 사건들 중에서 가장 중 요한 일은 물론 예수님의 재림과 지구의 종말이다.그런데 이 마지막 사건들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굉장한 세력의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계시하셨다. 요한계시록 13장은 그 세력을 ‘짐승’이라고 표현한다."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 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
주기도문의 여섯째 청원의 후반절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후반절을 일곱째 청원(별개의 간구)으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이것을 별개의 간구로 보고 두 간구로 구분하는데,"여섯째 간구(시험에 들지 말게 할 것)는 미래의 죄에 대하여 일곱째 간구(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이미 범 한 죄로부터 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라 했다. 반면에 죤 칼빈 (John Calvin)은 이 청원의 전반절과 후반절을 한 가지로 보며 오늘날 여러 학자들도 이것을 한 간구라고 주장한다. 메츠거(Metzger) 교수는 이 두 절을 "우리를 지키심(Protection)" 이라는 하나의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고 보았다.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마태의
한국교회는 찬양을 정말 좋아하는데 민족성이 가무(노래와 춤)를 좋아하는 문화적 배경으로 인하여 찬양사역자들이 많고 찬양 집회에 수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고 교역자 청빙에도 악기 사용과 찬양인도를 요구한다. 이러한 한국교회는 성가대를 조직해서 세우거나 찬양단을 조직하여 주일예배 시작 전에 찬양을 하여 분위기를 만들고 예배에서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 대형교회는 급여를 받고 악기를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있다.그리고 찬양 집회로 성장한 교회가 많아서 교회성장의 방법으로 찬양을 중요시하고 찬양사역자들은 예배자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찬양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하는 찬양이 정말로 성경적이고 교회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의 교회 안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Lead us not into temptation)여섯째 청원은 우리의 청원(We-Petitions)의 마지막 청원으로 마태복음에는 전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와 그리고 후렴으로 나오는 후절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로 연결 되지만 누가복음에는 전절만 기록되어 있다. 이 마지막 청원의 전반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청원의 핵심적인 단어가 되고 있는 "시험"(πειρασμος)은 무슨 뜻인가또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 하고 있는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1) 주기도문에서 이 "시험"이란 말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주기도의 마지막 간구에 나오는 "시험"은 근본적으로,사단 마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에서 매우 드물게 교파적으로 장로교회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주일 예배의 순서에서 축도가 루터나 칼뱅이 행하고 루터교회와 유럽의 개혁교회들이 사용하는 ‘아론의 축도(민 6:24-26)’가 아닌 미국 침례교회와 미국 장로교회의 일부에서 사용하는 ‘바울의 축도(고후 13:13)’가 한국에 들어 온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서 사용했기에 안타깝게 아론의 축도를 사용하면 신자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현상이 생겼다.그런데 과연 개혁주의 교회에서 아론의 축도가 아닌 바울의 축도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적 사고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 이유는 바울의 축도의 본문이 사실상 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한국교회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본문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와 색다른 신앙생활의 규범(regula fidei)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십일조와 새벽기도회다. 그래서 공적 모임으로 주일부터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고 중시하여 직분 임명에도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넘어서 새벽기도회를 보기도 한다.그런데 신앙적 사고로 생각해 볼 것이 새벽기도회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즉 과거의 농경사회에서 새벽기도회가 필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사회에서 사실상 새벽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새벽기도회 출석률은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세례신자들 중에 매우 적은 수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비판적으로 보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여러 모임들이 많고 새해를 맞이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교회도 새해를 맞이하여 준비하는 것 중에서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이 바로 ‘송구영신예배’다. 그런데 이러한 예배가 과연 성경적이고 개혁주의 전통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목사와 신자들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이러한 현실에서 문제 제기를 한 조직신학자 이승구 교수는 몇 년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서 송구영신예배에서 행하는 “말씀 뽑기는 반기독교적”이고 ‘뽑기 방식’의 문제에 대해 “한 구절만을 뽑아 생각하는 것은 성경 문맥을 단절시키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성경은 항상 그 문맥 속에서 읽어야 바로 해석할 수 있다”와 “점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기에 사실 거기에서 유래했다고도 할 수 있고, 꼭 그렇지
유엔은 1945년 CFR(미국외교협회)의 주도로 50개국의 대표들이 모여 설 립되었다.1 창립회의에는 74명의 CFR 회원이 참가했는데 CFR은 잘 알려 진 대로 프리메이슨의 하부기관이다.2 본부 건물도 대표적 프리메이슨인 록펠러가 기증한 땅 위에 지어졌다. 『300인 위원회』의 저자 존 콜먼(John Coleman)은 “유엔은 이미 프리메이슨의 손아귀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또는 “유엔은 프리메이슨에 의해 조직된 것이다”고 말하기도 한다.유엔 설립의 명분은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프리메이슨의 오랜 염원대로 신세계질서의 세계단일정부와 그를 위한 세계종교를 실현 해가는 것이다.3많은 사람들이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예수회, 오프스데이 등의 비밀 조직이 눈에 안 보인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곳 Las Vegas에서 26년간 치과(보철 치과) 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환자 중 90 percent가 senior 들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 중 몇몇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2018년도 들어 나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2018년도 12월 6일 기준으로 해서 세상을 떠나셨다. 숫자적인 면에서 올해가 가장 많았다.내가 이곳 Las Vegas로 이주하기 일 년 전 즈음인 27년 전에 나의 모교회인 서울 평안교회에서 시무하시고 원로 목사로 은퇴하셨던 고 김윤찬 목사님이 위중하셔서 나의 아버지와 함께 목사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분이 하신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나는 내가 평안교회에서 여러 장로님들
해마다 12월 25일이 되면 교회들은 제일 바쁘다. 그 이유는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여 성극도 하고, 선물 나누기도 하고, 각 기관마다 찬양도 하고, 새벽송도 하고, 이웃초청도 하고, 성찬식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념하는 축하를 한다.그런데 과연 이러한 성탄절 행사와 더불어 성탄절에 예배를 하는 것이 개혁주의 교회에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목사와 신자들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우선적으로 성탄절의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한데 원래 성탄절은 기독교의 절기가 아닌 것으로 우리가 지키는 12월 25일은 사실상 주후 336년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태양신의 생일을 성탄절로 정하여 지켰던 것을 이교적 요소를 제거하여 375년에 안디옥교회와 5세기에 알렉산드리아교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The Sixth Petition)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간구의 위치는 우리의 청원(We-Petition) 마지막에 있다. 우리의 청원(We-Petition) 다섯 번째 청원에서 다루었던 용서의 간구는 지난 과거의 죄의 해결함을 위한 것이지만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는 간구는 미래에 범할 수 있는 죄의 예방이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현재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이다.우리를 위하는 세 가지 간구 가운데 첫째 간구인 매일 양식(Daily Bread)은 육적인 것임에 대하여, 둘째 간구는 매일 용서(Daily Forgiveness
「영성과 건강」이라는 뉴에이지 잡지에 “적극적인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는 4가지 영적 기본훈련”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실렸다."조용한 곳에서 평안하게 앉으라. 핸드폰을 끄고 문을 닫으라.눈을 감고 내쉼과 들이쉼의 호흡에 집중하라.만일 생각이 오고 가면 당신의 의식을 호흡에 맞추라.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마음 속에 상상하라.구름들이 지나가게 하라.그 후 당신의 손바닥을 가슴에 얹으라!당신과 영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들, '아름다운 새벽', '예수님의 형상', '사랑의 감각' 등을 구상화 하라.마음의 영역의 모든 감각을 관찰하라.'열', '두근거림', '심장 확장', '벅참' 등 이러한 적극적인 에너지가 당신의 몸을 통해 흐르게 하라."놀랍게도 뉴에이지의 이런
개혁주의 신학자 존 그레샴 메이천은 오늘날 현대교회가 신비주의와 은사주의로 기울어진 것은 신앙에 대하여 반지성적인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 기독교의 신앙을 반지성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정확히 지적인 것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기독교가 지성적이라고 하는 것을 비판하는 자들은 예를 들면,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당시 삼위일체라고 하는 교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용어들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기독교에 대하여 단 한 번도 바르게 배우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오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가?예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는 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