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늘날과 같은 흉흉하고 어려운 세상 가운데 환경의 개선과 삶의 질을 변화시키어 모든 사람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 아님을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속(贖)하시려 대속(代贖)의 제물로, 그리고 속전(贖錢)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의 악행보다 더욱 중한 것은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목적은 그 개개인의 죄를 속해 주시고, 죄를 속하실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자연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상태에서 그것
칼빈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원인에서 그리스도를 담은 질그릇과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다(기독교강요, 3.11.7).성경에는 칭의의 방도인 믿음과 관련하여“오직 믿음만으로”라는 표현이 없고, 단순히“믿음으로”라는 기록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 의는 완전하고 충실한 의일 것이다.또한,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롬 3:21),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 3:24),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희소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으면 가치가 없고 흔하지 않는 것이라야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라도 그것이 아주 오랜 세월전에 사용되어진 것이라면 희소가치를 따져서 수백 만원을 주고도 살 수 없으리만큼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요즈음은 사람의 가치가 희소가치에 역으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사람의 수가 많아져 지구가 만원이 되어지자 상대적으로 사람의 가치는 점점 하락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가리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가진 존
다가오는 금주 31일은 종교개혁 50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이하게 되면서 새삼 되새겨 보는 단어가 ‘개혁’(改革)이라는 단어이다.사전적 의미로는 ‘법, 제도, 조직 따위를 새롭게 그리고 보다 좋게 고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말로는 ‘뜯어서 고친다’ 는 의미로 소위 그릇됨과 과오 나아가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온전하고 합당한 것으로 새롭게 세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하지만 성경적 개혁은 위와 같은 의미로서의 개혁이 아니며 먼저 종교개혁자들이 일으킨 종교개혁의 취지가 아닌 것이다. 교회의 개혁, 교단의
성경에서는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지키시는 목자이신 하나님 나아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기록하고 있다.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하면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중 첫째가 도덕상의 문제 즉 선악의 문제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의와 불의, 즉 당위인가 아닌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성경 말씀에서 가르치는 여러 가지 도덕적인 교훈을 따라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는 자기의 차원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정도(定道)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성찰하여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곧잘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하나님의 뜻’ 이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고 저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으로 갑론을박의 분쟁도 흔히 발생한다. 그러나 속단하듯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 어찌 보면 지극히 주관적 견해를 들어서 말하거나 아니면 성경해석의 오류나 편애적 인용으로 들어서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살피기 위해서는 심도 있게 고찰해야 할
우리가 흔히 교회 생활 가운데 자연스럽게 각자에게 붙은 단어가 바로 ‘믿음’이라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세 부류로 분류하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이것은 어찌 보면 아주 조심스러운 부분이고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아니면 신학의 부재에서 정해진 분류라고 보고 싶다. 좌우지간 그 첫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며 다음은 믿음이 적은 사람 마지막으로는 믿음이 많은 사람 혹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잘 알아야 하는데 믿음의 기준과 그 수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릇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성
1. 들어가는 말종교개혁자이며 성경 중심적 바른 석의와 깊이 있는 신학의 초석을 이룬 칼빈은 기독교 역사에 크게 이바진 인물이다. 그는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리로 풀어냈다. 그의 사상은 개혁주의의 시초가 되었으며, 오늘날 장로교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장로교회는 칼빈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신학과 성경관은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에 아직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개혁주의 신학 진영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주장의 뿌리를 칼빈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통해서 언약의 당사자들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아담, 아담과 하와, 아벨, 노아,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자손들, 야곱, 에서, 이스마엘, 이삭, 족장들, 모세, 레위인들, 레위제사장들, 이스라엘(유대인들), 다윗, 선지자들, 그리스도, 사도들과 선지자들, 교회와 하나님나라, 기독교인들, 로마의 교황주의자들, 유럽국가들, 모든 민족, 하나님이 양자 삼은 모든 사람, 신자들, 가족들, 아이와 어린이들, 주의 종들, 거룩한 세대, 이방인들 또는 모든 민족, 영적아들들 또는 자녀들, 후손 자손 후계자, 선택된 자들,
18세기 하반기에 프랑스를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철학적, 문학적, 지적 사조인 계몽주의 사상의 주된 특징은 보통 세속성과 합리성으로 말해진다. 그러므로 18세기 유럽인들이 인간세계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러하기에 그들의 사조와 철학적 사상의 고취는 인간성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종교적 시각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주안점으로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더불어 계몽사상의 부흥을 통하여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은 기독교의 말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우주를 권능하심으로 양육하시고 유지하시며 섭리로써 그 모든 부분을 다스리신다.1. 하나님의 섭리칼빈은 1권 제16장에 섭리를 다룸에 있어 먼저 섭리는 창조와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적 관계임을 설명해가면서 섭리의 정의는 하나님께서 우주체계와 그 세세한 부분까지 우주적 운동을 통해 조정하시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모든 것, 심지어는 하늘에 나는 새도 보존하시고(마10:29) 기르시며 돌보시는 분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은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보존자임을 드러내고 있다.(1.16.1)더욱이
하나님의 창조론 (창 1:1)칼빈의 사상에는 큰 원칙 두 개가 있다. 그 첫째가 바로 신학의 출발점과 사상의 바른 제시는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신학의 목적은 체험적이어야 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을 예배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창조 역사의 목적1권 제14장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칼빈은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를 통해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그분의 선하심을 알게 하는 것으로(1.14.2)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목적을 서술함으로써 창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간다.
1. 삼위일체의 실체와 위격의 구분① 하나의 신적 실체칼빈은 어거스틴과 정통 동방 교부들에 이어서 더욱 성경 안에서의 바른 고찰과 신학적 명료성을 드러내면서 성자의 완전 신성과 성령의 완전 신성이 성부와 함께 동등하게 공유하는 하나님의 한 실체 안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실체가 전체적으로 완전하게 성부와 성자에게 공통된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실체에 관해서는 참으로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있을 수 없다”(1 13 23).“하나님의 실체는 단순하고 분할되지 않으며 하나님 자신 안에 모든 것
1. 하나님의 무한하신 신적 위엄(1.10)칼빈은 기독교 강요을 툥하여 하나님의 삼위에 관한 교리를 성경에 비추어 아주 합당하게 피력하며 신학적 체계를 세워가고자 함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영적인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일반 대중의 잘못된 생각을 일축할 뿐 아니라 세속 철학의 교묘함을 논박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였다.그래서 고대의 어떤 이는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이며, 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라고 그럴듯하게 말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신성(神性)이 세계 여러 부분에 침투되어 있다고
1. 성경의 신빙성(1권 8장)8장에서 보게 되면 칼빈은 성경이 참됨을 보여주기 위한 자료를 다름 아닌 성경으로부터 가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묘사한바 그곳에 내재하는 하늘의 위엄, 모든, 부분들의 아름다운 일치,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적들, 구약 예언의 실현(1.8.3-10) 그리고 그 가르침이 지닌 천상적 성격과 신약의 단순성 및 권위, 이와 관련된 모든 입증 자료들이 다 성경에서부터 도출된다는 것이다.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조명하시되 하나님 말씀 그 자체를 직접 수단으로 사용하셔서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다는 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이 오직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그릇됨과 오류를 바로 잡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의 도해인 성경을 왜곡하고 잘못 해석하는 망령된 자들이 나오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며 통탄할 일이다."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칼빈의 를 다시 꺼내서 공부하고 살펴 정리하는 과정 가운데 내용들을 장별로 묶어서 기고하고자 한다. 그 첫째로 1권 1-5장의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요약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짓는 것으로 하고자 한다. 칼빈은 첫 장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그의 논의를 마무리하고, 이어서 구원에 이르는데 필요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위해 성경의 필요성을 논하게 된다.1-5 장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첫 번째 주요 관심사는 온 인류가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율법과 복음을 성경 안에서 온전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율법을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서 칭의를 부여해주신 동기와 더불어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규범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전적으로 부패, 타락한 인간은 누구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통한 의의 전가를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 의를 이루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에 현시대에도 율법주의자들이
성경은 의에 대한 온전한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1-22) 한편 이 말씀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에서는 의롭하심에 관한 물음과 답은 이렇다.60문 :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습니까?답 :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에 의해서입니다. 비록 나의 양심이 모든 하나님의 계명에 반해서 심각하게 죄를 지었음과 그 어느 하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부합한 영적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에 필수적 요소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호흡인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삶 가운데 상황과 닥쳐올 앞날에 대한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가는 기도는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항상 힘써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택을 매일 받는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다.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통해서 기도의 본질을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으뜸가는 특권이 기도이며 기도를 ‘믿음의 영속적 훈련’(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