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님들과 예장 고신의 신학위원회 임원님들께 이 글을 올립니다. 더불어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예장 합동, 예장 합신, 예장 백석, 예장 대신, 예장 개혁 등 한국교회의 기둥과 같은 장로교단들의 신학위원회 앞에 이 글을 올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박영돈 교수의 책 (2011년 출판, IVP)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책은 급하게 변질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독교 인기 서적입니다. 이미 많은 교인들, 신학생들, 그리고 목회자들이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그러나 박영돈 교수의 책 속에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예장 고신을 비롯하여 개혁교
박영돈 교수의 책 4장의 마지막 여섯번째 서평이다.박영돈 교수의 방언주장 6>현대 방언과 타협하여 교회에 성령의 미풍을 일으키라박영돈 교수는 110년 전의 미국 이단들이 일으킨 아주사 거짓부흥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된 현대의 방언 기도의 은사를 적대시하지 말라고 자신의 책 에서 시종일관 주장한다. 이것이 박영돈 교수가 방언에 관하여 한국교회에 미치는 가장 심각한 악영향이다. 박영돈 교수는 이단들이 시작한 거짓된 기도의 은사를 성경적으로 바르게 활용하고, 한국교회가 그것과 화합하면 사탄의 역사는 물러가고 성령의 미풍이 일어나 한국 교회를 살릴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돌아와 서로 화합할 때 방언의 은사는 교회에 더
박영돈 교수의 책 4장 서평 다섯번째 글이다. 박영돈 교수의 방언주장 5>방언을 공개적으로 추구하고 활용하여 소외되어 상처받는 사람이 나오게 만들지 말라 박영돈 교수의 현대 방언에 대한 주장의 핵심은 현대 방언을 공적으로 추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방언을 개인적인 기도의 은사로 알고 은밀하게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영돈 교수는 더 나아가서 개인들이 은밀하게 방언 기도의 은사를 활용함으로 자신에게도 유익하고 더불어 교회도 건강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한 박영돈 교수의 주장을 직접 읽어보자!“방언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서 주축을 이루는 것은 공중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마구 해 대는 것을 삼가라는 권면이다
박영돈 교수의 책 4장의 서평 네번째이다.박영돈 교수의 방언주장 4>"영적 지도자들에게 상담하면 진짜 방언인지 가짜 방언인지 알 수 있다."“또한 몰몬교 같은 이단이나 타종교에도 방언과 유사한 종교 체험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는 방언을 무조건 마귀적이고 인위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들을 모두 성령의 역사로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방언이 과연 성령의 은사인지 성경을 통하여 그리고 영적 지도자와의 상담을 통하여 면밀히 점검해 보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박영돈, , 176 페이지)“마지막으로 방언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권면은 자
박영돈 교수의 책 4장의 서평 세번째이다. 박영돈 교수 방언주장 3>방언은 인간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비한 수단박영돈 교수는 현대의 방언기도가 하나님과 인간의 영이 교통하는 신비한 수단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책 에서 주장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방언은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방언의 유형에 가깝다. 고린도전서 12-14장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이 방언의 특성은 특정한 지방의 언어나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종의 신비한 언어라는 점이다.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방언을 하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박영돈 교수의 책 4장에 대한 두 번째 서평이다. 박영돈 교수 방언주장 3>방언이 계시적인 은사이므로 계시의 완성과 함께 중지되었다는 은사중지론은 틀린 신학“필자는 아주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보수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한 교수는 바로 워필드를 뒤이어 은사중지론을 철통같이 고수했던 개핀 교수였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은사중지론이 필자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말씀의 능력이 신학적인 전통을 세뇌하는 마력에서부터 필자를 자유하게 한 것이다.”(172 페이지)“(워필드, 개핀의 은사중지론이 틀렸다고 말하면서)우리는 신학적인 전통이나 경험이
박영돈 교수의 책 의 4장을 밑줄을 쳐 가면서 읽었다. 4장의 제목은 “방언은 과연 하늘의 언어인가”이다. 한 신학자의 신학노선을 간단하게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방언에 대한 신학을 보아야 한다. 그가 방언에 대해 하는 말 몇 마디를 보면 그 사람의 신학이 보인다. 왜냐하면 방언에 대한 몇 마디가 곧 그 신학자의 성령론이고, 방언에 대한 좀 더 긴 말들은 곧 그 신학자의 조직신학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방언은 중요한 부분이다.성경을 떠나 점점 병들어가는 현대 복음주의 교회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거짓 방언이고, 동시에 가장 환영받고 있는 것도 거짓 방언이다. 이것만 보아도 아주사 거짓부흥을 통해 시작된 현대의 거짓 방언이 교회의 영적인 타락과 배도을 위해 얼마나
박영돈 교수의 책 을 계속 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읽을 수록 마음의 근심과 분노가 짙어진다. 박영돈 교수의 정체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이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이단들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말들을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사나운 적군에 편에 서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안심하고 서로 믿고 함께 힘을 합하여 성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우군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군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내부에서 슬그머니 성문의 빗장을 열어주는 사람주는 사람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박영돈 교수의 책
박영돈 교수의 책 의 2장 “성령의 얼굴에 나타나는 거룩한 수줍음”을 정독했다. 2장에서 박영돈 교수가 이야기하는 성령에 대한 내용은 매우 아리송하다. 이런 책이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그렇게 호평을 받았다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성령의 거룩한 수줍음?2장에서 박영돈 교수의 이야기는 성령의 성품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는 성령의 성품을 ‘거룩한 수줍음’이라고 표현했다. 성령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분임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다.“성령의 얼굴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거룩한 수줍음’이라고 할 수 있다.”(57 페이지)박영돈 교수는 예수님도 수줍어하는 분이고 하나님 아버지도 수줍어하는 분이라고 했다.“이 거룩한
바람을 쐬고 싶어 오늘은 집에서 좀 거리가 먼 맥도날드에 가서 몇 시간 동안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 그리고 밀린 책들을 읽고 왔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중요한 생각을 깊이하는 편이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확신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서 좋은 결과를 보았던 적이 많다.나는 하나님이 어떤 사안에 대해 직통으로 주시는 아이디어나 메시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시에 해당되고, 성경 66권과 함께 하나님의 계시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는 우리의 기도, 사색, 묵상, 연구 활동에 성령의 조명이 이루어짐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확신, 지혜, 소원 등이 형성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 신약 시
박영돈 교수의 책 을 읽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책의 전체 6장을 모두 정독하고, 각각 서평을 쓰려고 한다. 저자의 약점과 한계를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여 얻을 수 있는 진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발전시키고자 함이다. 오늘은 이 책의 1장 ‘뒤틀린 성령의 음성’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겠다. 성령 운동, 성령 사역자먼저 이 책의 제목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성령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왜곡하는 사람들로 인해 성령 하나님이 오도되는 현실을 말하고 싶어 이런 제목을 잡으신 것 같다. 그러나 이 제목 자체가 주는 나쁜 메시지가 염려된다. 지금 한국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칭 성령의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령과는 무관한 거짓 성령의 사람들, 즉 미혹의 영을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목회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믿음 하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믿음과 더불어 회개와 성화가 구원을 얻게 한다는 주장이 점점 대범해지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장로교 목사들이라는 사실이다.예장 통합의 동탄명성교회의 정병진 목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정병진 목사는 언제나 대범하게 행위구원론을 전파한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 종교개혁자 칼빈이 교회를 망친 주범이라고 담대하게 설교한다. 이 교회의 홈페이지에 있는 정병진 목사의 “구원은 상실되지 아니한다는 주장은 과연 성경적인가
합신 총회의 원로 박영선 목사님이 이전에 두날개를 계획적으로 옹호하였으므로 나는 굉장히 실망했었다. 그런데 오늘 한 폐친이 올린 글 속에서 박영선 목사님의 구원에 관한 탁월한 insight가 담긴 글을 보았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 유무에 있다. 불신자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외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감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은, 얼마만큼 윤리적인 삶을 사느냐가 아니라 이 감각이 생성됐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어야 한다.”(박영선 목사, 구원의 확신)박영선 목사가 말한 ‘하나님을 알아보는 영적 감각’이 구원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누가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를 이야기할 때, 박영선 목사의 말을
정이철 목사님은 순수한 복음의 정수로 한국 교회의 올바른 방향을 선도하고 있다. 박영돈 교수님은 고려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로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계에서 정평난 신학자이다. 두 위인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나의 모습은 고래 싸움에 새우 같다.박영돈 교수의 명성과 많은 지지자들의 '좋아요' 응원이 정이철 목사를 압도하는 것 같아 한 편의 글로 무게를 맞추어보려고 한다. 정이철 목사님의 행동을 ‘순수한 의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정이철 목사의 한국 교회를 위한 올바른 가르침을 사모하는 마음의 행동은 박영돈 교수님께는 당돌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페이스북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짧은 글로 견해를 피력하셨다. 이에 대해서 박영돈 교수님을 간략하게 비평하며 균형을 시도하고자 한다.
질문>정이철 목사님, 행위구원론자이고 신사도주의자인 미국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사랑과 진리교회)가 왜 고신대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었을까요? 믿음과 행위,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행위구원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벤자민 오 목사가 개혁주의 진영의 대표 학자인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자기 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칭찬하는 이유가 매우 궁금합니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자세하게 분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변>이전에 위 영상의 앞부분을 녹취하여 벤자민 오 목사의 말과 박영돈 교수의 말이 과연 성경적인지 분석했습니다. (참고 기사 “박영돈 교수님은 왜 벤자민 오 목사에게 이
질문>정이철 목사님, 행위구원론자이고 신사도주의자인 미국 뉴저지의 벤자민 오 목사(사랑과 진리교회)가 왜 고신대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었을까요? 믿음과 행위, 이 두 가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이 행위구원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벤자민 오 목사가 개혁주의 진영의 대표 학자인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을 자기 교회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칭찬하는 이유가 매우 궁금합니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자세하게 분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답변>영상에서 나오는 벤자민 오 목사의 멘트와 인용되는 박영돈 교수님의 주장을 그대로 녹취하여 분석해 보겠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말에 아무런 하자가 없음에도 벤자민 오 목사가
박영돈 교수님께!먼저 이전에 썼던 글에서 교수님께 무례한 표현을 사용했던 것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수님과 같이 널리 명망이 있는 분에게 정면으로 반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부러 독한 마음을 품고 시작하였으므로 무례한 언어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글들을 다시 읽고 점검하여 고치겠으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바랍니다.교수님과 여러 사람들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곧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금년에 한국 교회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성경적 칭의-구원론에 대한 논의가 매우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미국에 계시는 김세윤 교수님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와 구원을 얻은 성도라도 이후의 삶에서 진정한 신앙의 열매가 충분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에 대해 더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생애 동안 적극적으로 율법을 준행하시어 의를 얻으셨고,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상하게 총신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이 개념으로 칭의를 배운 적이 없다. 함께 총신을 나온 주변의 사람들도 동일하게 말한다. 총신을 나온 목회자들은 대부분 흠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시었다고 배웠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으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칭의를 주셨고, 그 피로 죄를 사하였다는 이론은 약간 다르다. 흠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한 율법의 요구대로 대신하여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고 동시에 의로운 자가 되었다. 나에게 많은
(이 글은 박영돈 교수의 페북에서 이미 900명 이상이 '좋아요' 추천하고, 100명 이상이 퍼나른 공적인 글입니다. 특히 정이철 목사에 관한 내용이므로 박영돈 교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에 게시합니다)정이철 목사라는 이가 나를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이단과 맥을 같이 한다고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반응할 가치가 없지만 혹 의문을 가질 분들의 분별을 돕기 위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의 글에 나타나는 신학적인 무지함을 금세 알아챌 것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의 가장 기본적인 문헌, 기독교 강요 3권이라도 읽어봤다면 그런 글은 결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목사가 종교개혁 구원론을 수호한다고 그토록 열을 올리니 정말 그가 그 구원론을 제대로 알고 비판
박영돈 교수의 칭의에 대한 글에 대해 사람들의 말이 많다. 어떤 분이 박 교수의 “값싼 은혜의 복음은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왜곡한 것”이라는 글을 자신이 페북에 올리면서 “과연 올바른 글일까요?”라고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내용을 보았다. 궁금하여 나도 박 교수의 그 문제의 글을 읽었다. 박 교수의 글을 읽고 느낌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큰 틀에서 전통적(성경적) 칭의론자들과 궤적을 같이 하고, 동시에 김세윤 등의 믿음으로 구원 얻으나 그 후의 삶의 내용으로 구원이 완성되기도 하고 파괴되기고 한다는 행위구원론자들의 주장에도 일면 동조하여 무난한 노선을 견지하며 넒은 지지층과 인기를 구가하려는 신학자의 얄팍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정이철 목사가 박 교수의 글을 읽고 느낀 점)물론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