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산 목사는 라는 출판사 사역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을 이끌고 지키는 개혁주의 거목의 이미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는 백금산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대해 검증을 해야만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그릇된 신앙과 신학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한국 장로교회가 에드워즈를 이용했던 사단에게 사랑과 믿음을 바치게 한 백금산 목사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1735년 무렵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목회하는 교회와 그의 부흥의 영향을 받은 이웃 교회의 교인들 속에서 자살하는 괴이한 열풍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 이유는 단
로잔운동 홈페이지에 있는 자체 보고서 '로잔과 세계 복음주의'에 따르면, 로잔대회는 '세계교회의 넓은 복음적 가족'을 이루는 것을 핵심 아젠다로 삼아, 로마 카톨릭과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라고 한다. 이에 한국 로잔위원회는 3차 로잔 경험을 바탕으로 WCC 한국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2010년 공포하였다. 이는 2013년 WCC 대회가 열리기 3년전, 2024년 로잔 대회가 열리기 14년 전으로, 이미 치밀한 계획하에 열리는 대회임을 알 수 있다. 이번 9월 한국에서 열리는 로잔대회는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열린 신학계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הֵילֵל)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2). '골고다'나 라틴어 '갈보리'는 둘 다 해골이란 뜻이기 때문에 라틴어- 영어 문화권이 아닌 한국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이사야서의 계명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헬렐' (הֵילֵל)은 문제가 피해지지 않습니다.이사야 선지자 당시는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 3세 시절로 앗수르 역사상 최전성기이므로 12절 말씀은 훗날에 올 바벨론 왕을 빗대어 중의적으로 선포하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사실 가톨
신호섭 교수의 책 속에 나오는 참고할만한 좋은 자료들을 정리하였다. 이 책 233 페이지에 메이첸(Gresham Machen, 1881-1937)이 임종의 침상에서 동료 신학자 존 머레이에게 했다는 말이 나온다.“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나는 신호섭 교수가 소개하는 메이첸에 임종의 침상에서 했다는 이 말을 보는 순간 “과연 메이첸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고 죽은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구원은 거룩하신
로잔운동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자체 보고서 '로잔과 세계 복음주의'에 따르면 로잔대회는 WCC와 WEA의 전통과 흐름 가운데 태동함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로잔대회는 WCC의 종교통합에 반대하며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교회운동의 일부로서 WCC의 전통 위에 세워진 선교계의 종교통합인 것이다.이는 성공회 신부 존스토트가 기안한 로잔 1차 선언문으로부터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복음을 개인의 구원이 아닌, 사회 구원, 즉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을 하나로 묶어,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찬송가 582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는 삼일절이나 광복절, 625 사변일 등, 국경일과 관련된 기념 주일 예배 때 주로 불려지는 노래이다. "찬송' 이라고 하지 않고 "노래"라고 말한 이유는, 이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지도 않고, 기독교 교리가 담겨 있지도 않은 민중가요 수준의 노래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가사를 자세히 보면, 단순히 민중가요 수준의 노래가 아니고, 사탄을 찬양한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 그 뜻을 알고 보면 오싹한 느낌이 온다.이 노래는 1, 2절은 장공 김재준 목사가 작사했고, 3절은 문익환 목
김재성 교수는 2021년에 출판한 자신의 책 에서 웨신(WCF)의 학자들이 능동적 순종 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면서, 그들이 ‘온전한 순종’이라고 얼버무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한 뒤, 왕조가 바뀌면서 제임스 1세의 말기에 이르게 되면, 당시 권세를 잡은 로드 대주교와 국가교회 내부가 알미니안주의자들고 채워졌는데, 반율법주의가 범람하는 상황이 되었다. 칼빈주의자들과 로드의 국가교회는 반율법주의를 반대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대해 완벽하게 순종하신 것이 성도들에게
글을 시작하며번역 성경(신약)에서의 오역과 오석들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는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당시 유대인의 삶의 정황(생활환경, 관습 등)을 배경과 소재로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유대인들의 삶의 정황을 놓치면, 특히 예수님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진다. 따라서 번역 성경(신약)의 오역과 오석이 예수님의 비유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
조롱>(이 영상을 보고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조롱을 남겼다.)“이단이 아니라면 예수의 100% 인성(+100% 신성)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100% 인간이므로 십자가 이전에는 율법에 순종을 해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참 쉽죠잉?”. 정이철 목사의 답변>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의 인성에는 죄가 없습니다. 아담의 죄와 무관하게 성령에 의해 창조된 인성입니다.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 죄를 지적하고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율법을 지키고 말고 할 것이 있습니까?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잠시
21년에 이라는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많은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는 책을 펴내신 분이 한국에 계신다. 그 책의 85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그러나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책임을 어기고 불순종하였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연 계시와 함께 주어졌다.” (84 페이지).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이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자연계시와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은 서로 어울리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은 특별계시이다. 구름, 산, 냇물, 바다, 나무 등의
정직하지 못한 경제활동에서 파생 되어진 천박한 자본주의는 유대인들의 탐욕에서 나온 이윤 창출을 비난하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정직한 이윤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구조 속에서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는 착취와 수탈이라고 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시장의 환경 속에서 유대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하는 용어의 의미이다.세상의 가치관은 이미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충고>방언에 대해 한 말씀 하자면, 방언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자에게 방언이 표적으로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에게 방언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구요.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타난 방언을, 그렇게도 쉽게 ‘변태 방언’이라는 식으로 폄하하고 모욕을 주는건 ‘바른 믿음’의 자세는 아니라고 봅니다.바른 믿음은 어디까지나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니까요. 목사님은 은사 중지론의 입장에 계신 것 같은데, 그것 역시 하나의 ‘성경 해석’이고 목사님의 주장일 뿐이지
21년에 이라는 책을 펴내신 분이 한국에 계신다. 그 책은 매우 귀한 자료들을 많이 담고 있어, 연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주장이 성경적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회사의 중요한 자료들을 많이 담고 있으므로 연구하는 사람이 참고할 좋은 책이라는 뜻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두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자료들을 사용하기 위해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94페이지 이런 내용이 나온다.“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기에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기능들을 강
(예장합동 총신대보(2016년 4월)에 실린 글을 보고 정리하다.) 프랑스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지인 '떼제(Taizé) 공동체' 한국인 최초의 수사인 '신한열'씨의 인터뷰 기사가 전면에 실렸다. '총신을 바꾸는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신한열수사'의 인터뷰기사를 통하여 수 많은 총신인들이 '떼제(Taizé) 공동체'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갖게 될지 참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인터뷰기사는 이런 글로 시작한다."지난 3월 19일 토요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떼제(Taizé) 예배가 진행되었다. 근교에서는 물론 전국 방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