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큰일 입니다. 지금 WEA 문제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 목사들의 타락상 입니다. 판데믹 이후로 그들의 부패가 점점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건물을 가지고 있는 목사들이 교회를 사유화 하려고 하고있고 성스러운 선교단체를 이용하여 돈을 빼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합동이건 통합이건 부패한 목사들의 우상은 돈입니다. 위 영상의 수법과 다른게 없습니다.제가 아는 목사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니까 “목사는 저럴 수가 없다 도둑놈이 목사노릇 한것이다” 라고 말 하더라고요. 위의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고) 조용기 목사가 한
나는 지난 17년 동안 종말론을 연구해 왔다.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부활'이라는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필자는 약 2개월 전 이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다니엘서와 70이레'라는 제목을 가지고 다니엘서를 1장 부터 12장 까지 6시간에 걸쳐 함께 공부한 한적이 있었다. 단 12장은 주로 종말론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필자가 부활, 특히 '영의 부활'과 '영의 사망'에 관해 강의 하던 중, 어느 목사와 토론을 했다. 그 목사는 "우리는 영혼불멸을 믿는데 어떻게 영이 살고 영이 죽을 수 있는가 ?"라고 말했다. 또한 얼마
예수님은 성육신 하실 때부터 부활 하실 때까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 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제사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의 요구를 100% 만족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시고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성으로 전락시키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종속 시키려는 위험한 사상입니다.1) (김리훈 장로님의 이 말씀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의견이 아래 각주에 있습니다)예수님은 1) 성경대로 부활하셨고(고전 15:3-4), 2) 사망에게 메어
정이철 목사님 글과 서철원 박사님 글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애당초 예수님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에 관해서는 문외한 이었습니다. 그러나 에 실린 여러 글들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저는 요즈음 안식교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6월 달에 제가 안식교에 대해 presentation할 계획이 있습니다. 안식교 교리 중에 ‘조사심판’ 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음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음으로 죄는 용서 되었지만 죄가 도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말(말소)되지
나는 애송이 신학자 이기 전에 과학자이다. 그래서 나의 논리는 일반인 보다는 앞선다. 만약 아담이 영생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애당초 선악과 명령을 주시지 않았어야 했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 명령을 주셨을지라도 아담은 그 명령을 반드시 지켰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 명령을 지키지 않있다. 물론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즉 아담은 지, 정, 의를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피조물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이 하나님처럼 영생으로
저를 비롯해 많은 복음주의 자들이 Trump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Trump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는 의심이 갑니다. Trump 임기가 마치면서 미국이 다음과 같이 되었습니다.1. 미국이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로 양분화가 되었습니다.2. 미국이 경제적으로 양분화가 되었습니다.트럼프는 특히 big tech companies (capitalists)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막대한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들에게 세금 면제 혜택을 주었고, 코로나 구제금융을 핑계로 일반인 들에게 푼돈 주면서 이들에게는 엄청난 자금을 지원한 것입니다. 앞에서
8월 15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8.15 국민대회가 수십만이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변경하고 북한 괴뢰정권과의 연합체제를 꾀하려는 문재인정부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물론 이 사실은 한국 주요언론뿐만 아니라 미국 주요언론에서도 중요한 기사로 보도되지는 않았습니다.이것을 보는 미국의 입장도 매우 모호 합니다. 정의를 위해 일하는 미국은 더 이상 아닙니다. 미국이 앞장서서 좌파 정부를 궤멸해야 하는데 뒷 짐지고 수수방관하는 자세입니다. 지금은 미국을 유대인 녀석들이 접수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것이 돈과 이권
역대기 상 4장에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는 ‘축복의 기도’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브루스 윌킨스가 2001년도에 쓴 ‘야베스의 기도’가 bestseller가 되어 한국에 sensations을 불러 일으켜 주기도문 다음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복음성가에도 여러 version 으로 나올 만큼 많은 기독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기도가 너무 기복적으로 쓰여 번영의 신학을 강조하는 분들에게 악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지금까지 복을 받지 못한 이유가 ‘야베스의 기도’를 하지 않아서 인 것처럼
지금 전 세계가 이 COVID-19의 책임을 중국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중국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입장이 곤란한것이 미국도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와 vaccine에 오래 전부터 중국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Bill Gates 입니다. 만약 vaccine이 개발되어 globally 공급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벌것입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virus에 전염되어 고통당하고, COVID-19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목사님의 기도입니다.) 주님! 코로나19로 인해 불과 한달 새 우리의 생활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분명 있음을 보게 하시고, 우리가 잘 못 가고 있었던 길을 반성하며 다시금 주 앞에 바르게 서는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1>주님! 우리는 지금 평범한 일상이 다시 오기를 간구합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가장 큰 축복임을 이제라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리며, 그동안 주님이 주신 행복을 곁에 놔두고 행운을 찾아 헤맸던 죄를 용서하시며 무엇이 가장 소중한 축복인지 깨닫게
그러면 예수님의 12제자의 한 제자 였던 ‘가롯유다’를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 칼빈주의의 입장가롯유다는 선택 받지 못 했기(유기되었기) 때문에 종국에 죄 가운데 버려두사 구원 받지 못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는가 ?1) 토기가 토기장이 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따질 수 없다(예레미야 18:1-12).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감추인 뜻에 의한 것이다. 2) 다른 열한 제자들은 가롯 유다가 마지막 때까지 예수님을 배반하리라고는 몰랐다.그가 예수를 배반하고 은 30냥에 판 그 당시는 그가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고 그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는지 유기되었는지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가롯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비교해 보자.1. 타락에 관하여1) 칼빈주의 T: Total Depravity(Corruption, Inability) 전적 타락(전적 부패, 전적 무능력)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죽은 상태이며 구원에 관한 한 전적으로 무능력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믿음을 주셔야 믿는다.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것이다.2) 알미니안주의 - 자연적 무능력인간의 전적타락은 인정하나 하나님께서 선행은총으로 인간 안에 복음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회복시켜 주셨다. 구원 얻는 믿음은 죄인(인간)의
미국에선 D. L. Moody와 근본주의 자들의 역할로 1920년대 초반 까지도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였다. 1883년 부터 1887년 까지 ‘나이아가라 예언 사경회’를 열어 보수 성경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향해 다음의 근본주의 5대 교리를 선포하였다.1) 성서무오설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3)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4) 기적의 역사성5) 육체적 부활과 재림1910년부터 1915년 까지 ‘The Fundamentals’라는 소책자 운동을 통하여 근본주의 신학 5대 교리를 변증하는 홍보하면서 근본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4년의 PCUSA의 Auburn 선언은 ‘성서무오설은 해로운 교리’라고 결정하고, 1925년 테네시에서 열린 스콥스 재판
회심 전의 죄인들에게는 율법이 그들을 죄의 굴레로 속박하거나 정죄하였으나, 회심 후 즉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율법이 더 이상 그들을 족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유하게 하고 온전하게 한다.그리고 “그 율법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약 1:25)고 하였다. 물론 십자가 사건 이후 의식법(제사법)과 사회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의식법과 사회법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공의는 우리가 기억하여야 한다.율법의 도덕적 기능인 십계명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 보다 더 높은 도덕과 윤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칭의 된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 3장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남자를 먼저 창조 하셨고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창조의 질서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신 것처럼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다(고전11:3; 고전 11:7-9; 엡5:23). 예수님이 자기의 피를 흘리시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자는 질그릇 같이 연약한 여자를 그렇게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엡 5:21-25).가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할 때 (관계 속에서 신실할 때) 가정에 질서가 생기는 것이고, 그 질서의 결과는 화평이다. 그리하여 고전 14:32-33을 보면, 예언하는 자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의지로써 스스로 절제하며 질서있게 예언해야 함을 말한
구원을 받았는가? 라는 질문보다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셨는가, 거듭났는가하는 사안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된 것은 엄마, 아버지께서 너무 심심해 하셔서 였습니다. 교회를 가면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있고 한국음식도 먹을 수있다는 바람에 동네사람을 따라 첫발을 내디뎠습니다.그냥 라이드만 해드리던 제가 두 시간 후 다시 픽업하러 가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냥 교회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10년 이상을 그렇게 교회를 다니다가 같이 일하던 동료의 성화에 기독교 방송을 듣게 되었지요. 부르스 틸먼 목사님의 부활절 설교의 본문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습니다. 그냥 줄줄 외울 수있는 구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말씀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위해 그
종교개혁 시대의 칼빈과 영국 식민지 시대에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Virginia에서는 성공회, New England에서는 회중교회를 중심으로 정부가 교회에 관여하는 일종의 신정정치를 구현하였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의 도전에 직면하여 제네바에서 교회를 개혁하였는데, 율법에 기초한 엄격한 교회법을 제정하였고, 그 법을 실행하는 종교국을 설정해, 제네바 시민들의 종교생활을 점검하였다. 만약 법을 어길시 목사, 장로, 성경 교사등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그 법에 의하여 처벌 받았다. 벌은 엄격하여 권징, 출교, 파문, 축출, 고문, 심지어 사형(화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여 외부에 의한 억제가 없으면 인간은 방종에 빠지기 때문이었다.또한 그 당시 교회회원이 되는 것과
저는 청년시절 20대말, 사랑의 교회에서 나온 제자훈련 교재를 가지고 공부할 때에 구원의 확신을 전적으로 수긍 했습니다. 그 때에는 구원파처럼 내가 구원받은 날짜와 시간까지 적어내곤 했었죠. 1990년도 초에는 그만큼 구원파의 영향이 기존 교회에 까지 미쳤습니다.그러나 성경을 연구하고, 특히 종말론을 연구하고, 이단에 대해 공부한 결과 그것이 잘못됨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구원의 확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또한 구원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것, 즉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지, 정, 의 3 요소 중 감성(체험)에 속하는 부분입니다.기독교는 신비를 포함하기에 신비와 체험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고)하용조 목사나 에서 소개된 시드니의 송선강 목사의 성령세례 사상은 동일한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인간 편에서 노력한다는 사상은 신인협력설, 반펠라기우스주의에서 파생된 알미니우스 사상이다.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에게 때가 되어 성령을 보내셔서(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회개케 하시고 믿게 하신다. 그의 증표로 물세례를 주는 것이다. 물세례는 인간이 주는 것으로 “죄를 씻는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물세례를 받는 목적은 죄인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유아세례는 합법적인 것이다. 모든 인류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것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이 말
요즈음 교역자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수위가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음행, 간음, 강간, 성추행, 성폭력, 살인, 자살, 학력위조, 논문표절, 교회의 사유화, 교회세습, 배임, 횡령, 황금만능주의, 불법, 탈세 등 우리가 전에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시대가 가면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라고 하는 말씀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계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이것을 어떻게 보실까요? 이것이 과연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조들이 했던 일이었을까요? 과연 이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 입니까?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밀레데 항구에서 에베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