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의 하나는 인공임신중절수술 즉 낙태를 용납하는 것이다. 낙태는 오늘날 성적 문란과 더불어 행해지는 매우 심각한 사회악이다. 낙태로 죽어가는 어린 생명은 셀 수 없이 많다. 1990년의 한 보고서는 “전세계적으로 인공유산은 매년 5,500만건에 이르고 있는데, 이 중 소련이 가장 많아 연간 650만건이고 미국이 150만건에 달한다”고 말하면서 “진짜 놀라운 것은 한국이 150만건(1985년)에 달하고 있어 인구 비례로 따지면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통계는 1960년도의 10만건에 비해
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는 중요한 문제들 중에 또 하나는 현대기독교음악(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문제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음악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전에 술집과 댄스홀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종류의 음악들이 버젓이 교회들 안에서 연주되고 있다. 기독교 방송국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가운데도 그런 것이 적지 않다. 교회 음악이 세속 음악과 너무 비슷해졌다. 전도 집회 시 세우는 밴드들에서도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신학교들에서도 그런 유의 노래가 불려진다. 교회 음악의 이런 변화
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우는 일이다. 세상의 남녀평등주의 사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고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우는 일로 나타나고 있다.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변증학 교수요 프란시스 쉐퍼 연구소 소장인 제람바즈 교수는 1997년 라브리 청년대학생 수양회에서 “세상 속의 일그러진 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면서,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에 관해 구분하고 있지 않으며,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경말씀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의미가 아니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교회연합운동가들과 또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넓어진 선교관’은 정당한가? 교회의 사명(mission)은 복음 전도 외에 사회정치활동을 포함하는가?‘교회의 선교’란 무슨 뜻인가?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은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즉 교회는 하나의 단체이다. 또 선교(宣敎)란 문자적으로는 ‘교(敎)를 선전하는 것’이라는 뜻이지만, 영어의 미션(mission)은 ‘특수한 임무’ 즉 ‘사명(使命)’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교회의 선교란 단체로서의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성도들의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에서 선교 개념의 변질뿐 아니라, 사회정치적 관심과 행동주의적 태도를 볼 수 있다. WCC 헌법은 그 단체의 한 기능을 진술하기를, “인간의 필요에 대한 봉사, 사람들 간의 장벽들의 제거, 및 한 인류 가족의, 정의와 평화 증진에 있어서의 교회들의 공동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데이빗 스토우는 1980년 WCC 멜본 세계선교와 전도대회에 관해 말하기를, “멜본 대회는 사회 활동에 관한 대회보다 훨씬 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들에 집중하였다”고 하였다.교회연합운동가들은 사회적 관심과 활동이 그리
오늘날 교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넓어진 선교관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선교(宣敎, mission)는 주 예수께서 교회에 명하신 전도의 사명을 가리켰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 얻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귀하고 중대한 임무이다. 그러나 오늘날 선교에 대한 이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개념이 변질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를 죄인들의 영혼 구원의 활동으로만 보지 않고, 교회가 세상 속에서 행할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은사주의자들과 신사도운동가들은 때때로 자신을 대단한 지도자로 높이고 교만해 보인다. 벤틀리는 암을 고칠 때 사람들을 치거나 부츠를 신은 발로 걷어차는 등의 행위를 한다. 소강석 분당 새에덴교회(예장 합동) 목사는 성경보다 목사의 강단 설교가 위에 있으며 성도들의 존재 목적이 목사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이단자들의 특징으로 교만을 들었다(벧후 2:10; 유 8, 11, 14).또 은사주의자들과 신사도운동가들은 때때로 음행 문제로 몰락했다. 1991년 가을, 밥 존스의 부도덕한 섹스 행위가 폭로되었다. 2004년 폴 케
은사주의자들은 때때로 교리적, 윤리적 탈선을 한다. 은사주의자들과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풍유적 성경해석(영해)을 선호한다. 그러나 풍유적 해석은 성경의 바른 교리와 윤리의 교훈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유익이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되고 혼란을 준다.초기의 은사주의자 윌리엄 브래넘은 삼위일체, 원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필요성을 부인했고 인간은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는 작은 신이라고 믿었다. 1949년 미국 오순절 교단조차도 브래넘의 사상과 활동을 이단이라고 발표하였고 특히 사도와 선지직의 복원, 임파테이션[은
오늘날 은사주의는 병 고침과 기적 행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례들은 성경의 사건들의 특징과 달라 보인다.성경에서 주 예수님과 사도들의 병 고침의 사례들은 즉각적이고 비제한적이었다. 죤 맥아더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병고침의 특징을 이렇게 열거한다:① 한마디의 말씀이나 한번의 만짐으로 치료하셨다(막 8:22-26에 소경에게 두 번 안수하신 예외는 있었지만).② 즉시 치료하셨다.③ 완전히 치료하셨다.④ 모든 사람을 치료하셨고 하실 수 있었다.⑤ 신체 기관의 질병들도 고치셨다.⑥ 죽은 자들을 일으키셨다. 그러나 오늘날
초자연적 은사들의 실재성이 의문됨셋째로, 은사주의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교회역사상 계속 있었고 오늘날 교회들 안에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그 실재성이 의문된다. 계시와 예언초대교회에 몬타누스파는 초자연적 은사들을 주장했으나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18세기 에드워드 어빙이 설립한 카톨릭 사도교회도 사도적 은사들을 주장하고 예언도 했으나 어떤 것들이 성경과 충돌하고 또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정죄되었다. 19세기에, 안식교, 몰몬교, 및 여러 신비주의 집단들이 성경 외의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들을
은사주의는 예언, 방언, 병고침 등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가 역사상 계속 있었고 오늘날도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오순절파뿐 아니라 또한 전통적 교단들 내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 그러나 은사주의는 다음과 같이 비평되어야 한다.성경의 충족성과 종결성을 부정함첫째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계속 있었다거나 회복되었다는 주장, 특히 하나님께서 성경 외에 다른 계시와 예언을 주신다는 주장은 성경이 하나님의 충족한, 최종적 권위의 말씀, 즉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범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은사운동은 성령세례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 특히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강조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들, 방언 통역 등을 말한다(고전 12:8-10).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사도시대에 주신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성경 역사에서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수단이었다. 이와 같이 사도시대에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과 확증을 위한 것이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은사주의는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신자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감리교와 성결교의 교리 사상과 비슷하고 D. L. 무디의 협력전도자 R. A. 토레이의 사상과도 통한다.오순절 사건성령세례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관계된다. 그 사건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수한 의미오순절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과정에서 시대적 분기점을 이루는 몇 가지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첫째,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성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성령 강림을 약속하셨다. 이
은사주의는 매우 감정적 경향이 있다. 그들은 주로 CCM을 사용한다. 오늘날 이런 풍조는 은사주의 교회들뿐 아니라, 많은 교회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빈야드 운동을 시작하였던 존 윔버는 원래 재즈/락 음악가이었고 1980년대 찬양사역으로 시작하여 빈야드 운동을 일으켰다.신사도운동은 드럼, 기타, 키보드를 사용하는 찬양사역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몰입시킨다. 그들의 집회들에서는 참석한 사람들이 웃고 미친 듯이 뛰고 구르고 소리지르는 등의 일들이 나타났다. 교회가 사탄의 놀이터가 되었다. 존 윔버는 그것을 성령 임재의 증거라고 주장했고 피
은사주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적 주장을 한다.성령세례와 방언첫째로, 은사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령 받는 경험을 강조한다. 또 은사주의는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로 방언을 강조한다. 은사주의는 방언 운동이었던 오순절주의에서 기원하였고 오순절주의는 방언 은사를 강조하였다. 북미오순절협회 헌법 제5항은, “충만한 복음(full gospel)은 . . . 성령의 세례와 그것의 최초 증거로서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하였다.알파 코스에
오늘날 교회의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은사주의이다. 은사주의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오늘날도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은사주의의 역사은사주의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오순절주의에 뿌리를 두었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경향을 가졌거나 성령의 특별한 체험을 강조하는 인물들이나 활동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은 오늘날의 은사주의와 비슷하였든지 오늘날 은사주의 성령론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에 몬타누스파와 종교개혁시대에 신령주의자들(spiritualists), 또한 종교개혁 후에도 퀘이커교도들, 웨슬리와 감리교회, 에드워드 어빙
복음주의의 문제는, 비록 20세기 중엽 미국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였지만,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보수적 교회들은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복음주의의 문제는 신학적 변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제에 있다. 그들의 자유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의 교제의 문제이다. 복음주의자들의 다수는 자유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비평하거나 배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교단들이 고의적으로 그들을 포용할 때에도 그 교단들 안에 머물러 있으며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잘
오늘날 복음주의의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은사운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것이다.은사운동과 천주교회 포용의 예들오늘날 복음주의는 은사운동에 대해 포용적이다. 아니, 포용적인 정도가 아니고 많은 은사주의자들을 포함한다. 1993년, 카리스마지는 오순절파가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 회원교회들의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보고서는 약 80%라고 한다. 또 미국복음주의자협회 회장 케빈 매노이아는 자신이 복음주의 운동에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또
복음주의가 무엇인가?복음주의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개신교회를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 성례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를 가리키는 용어이었다.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교회에 퍼지기 시작하고 1940년대에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복음주의는 전통적 개신교회의 입
오늘날 교회연합운동은 심지어 종교다원주의 경향을 띤다. 종교다원주의란 모든 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길이며 결국 다 천국에 이르게 한다는 사상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의 한 결과이다. 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기독교 자체는 최종적이지도 않고 보편적이지도 않다. 단지 그것이 증거하는 바가 최종적이고 보편적일 뿐이다. 기독교의 이 심오한 변증법을 잊어버리고 교회적인 혹은 정통적인 자기 주장들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자기 주장들에 대항하여, 소위 자유주의 신학은 한 종교가 최종성이나 심지어 우월성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