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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용추가)한글날에 신호섭 목사님께 바른믿음에서 올린 글에 부가하여.

닉네임
오직 믿음으로
등록일
2019-10-10 14:02:59
조회수
1161
믿음. 성령. 연합 이 세 단어는 칭의의 이해를 위한 키워드입니다(롬8:3~4).
믿음에 관한, 의에 관한, 칭의에 관한, 전가와 구원에 관한, 사랑에 관한 짧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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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또 완성자(히12:2 KJV)이십니다. 믿음의 출처는 분명히 우리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행함의 시작이며 원동력입니다.
믿음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요3:16) 은혜에 의하여 선물로 주신(엡2:8) 것이며 하나님께로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의로 여기셨고(롬4:9)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정받은 우리도 의로 여기심을(롬4:24)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에 죄를 정하심이 율법의 요구(ESV; NIV) 곧, 율법의 의(KJV)가 성취됨이며(롬8:3~4), 이것이 전가되는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충분한 전가되는 의이고 그 이유는 믿음과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롬5:5 ;롬13:10 ;갈5:18)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충분하기(롬4:9 ;롬6:11~14 ;롬8:4 ;갈5:18 ;롬8:9~11 ;고전15:54) 때문이지만, 예수님을 부활되시게 한(빌2:8~9) 예수님의 의도 살펴봅시다.
죄의 값을 지불하라는(히9:22) 율법의 요구를 "대신" 완성하시어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롬3:25) 하심이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이자 의이며(롬5:18),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습니다(롬 5:19). 이 순종이 예수님의 의입니다.
서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입니다“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성육신부터 십자가의 죽으심까지 성부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셨다. 성육신도 율법순종인가. 둘째,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수준을 뛰어넘어 죄인들을 예수님의 몸보다 더 사랑하셨고, 예수님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셨다. 예수님의 율법지킴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 순종함인가, 율법의 요구를 대신 성취함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 순종함인가.)

죄의 사함을 통해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롬3:25) 하심이" 예수님의 순종인데,
칼빈은 그냥 죄 용서만으로 칭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칭의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게 주신 믿음이, 죄 용서를 받아들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 효력을 발생시킴에서 나옵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골2:12), 연합되었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고후5:14)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받았습니다(골3:1).
믿음 안에서(갈2:20) 바로 이 연합됨으로 함께 죽고 부활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칭의입니다(고후 5:21).
믿음이 의로 여기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고전15:53)"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롬4:24) 하나님의 복음을 믿습니다(요3:16).
믿음으로 우리가 얻는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 곧, 독생자의 성육신과 대속과 부활을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입니다.
예를 들어 성부하나님께서 행하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일을 믿지 않으면(롬10:9~10), 율법의 의(율법의 요구)의 성취가 전가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연합과 의의 전가를 이룹니다.
성육신하시고 화목제물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성부하나님에 의해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믿기에, 주로 영접하고 시인함으로 칭의와 구원을 받습니다(롬10:10).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을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시인함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완성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성육신하심과 대속하심과 부활되심 모두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몸보다도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셨습니다.
율법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에 죄를 정하심이(롬8:3)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 곧, 율법의 의가 믿음 안에서 전가되어 성취됨이며(롬8:4),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는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롬3:25) 하심이 예수님의 순종이지만(롬5:19),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께서(요3:16) 독생자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고(롬5:8) 믿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신 것도(골2:12) 그 큰 사랑을 인하여(엡2:4)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엡2:5)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고후5:21).
그러므로 새계명을 주시면서 당부하신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하신 말씀(요13:34; 요일2:8)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며(요일3:16),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육신에 죄를 정하셨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 곧 율법의 의가 성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롬8:3~4) 성령을 따라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성령님이) 거하시므로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롬8:35)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늘과 땅과 만물들을 창조하셨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고 지음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증인들이다.)




(눅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롬13: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엡2:4~5)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분별해봅시다.
예수님의 율법지킴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 순종함인가, 율법의 요구를 대신 성취함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 순종함인가.
예수님께서 육신에 죄를 정하심이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 곧, 율법의 의가 믿음 안에서 전가되어 성취됨이며(롬8:3~4 ;갈5:18),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는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롬3:25) 하심이 예수님의 순종입니다(롬5:19)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눅10:36) 예수님의 몸보다 더 사랑하셨고, 예수님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의 율법지킴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 순종함인가, 율법의 요구를 대신 성취함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 순종함인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입니다.
분별하고 판단해봅시다.






그리고 법의 관점에선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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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담은 완전한 영생의 상태로 지어졌습니다.
후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영생을 유지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행위 계약이 있었습니다.

2)창세기부터 계시록과 계시록 이후를 관통하는, 성경 전체의 모든 세계에 적용되는 한 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입니다.
아담은 그 법을 지킬 능력이 있음에도 반역함으로 불순종했고 크게는 그 법도 어기고 사실상 그 법에 종속되는 행위 계약도 깨트렸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되었습니다.

3)모세의 언약도 그 법에 종속되는 언약이며 동시에 명백한 상속 언약으로 성경에 정의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 당시 유일한 하나님 백성된 유대인들에게 주어졌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유대인들에게 초등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초등교사는 범죄들 때문에 덧붙여 주신 것으로 하나님 뜻을 알아도 온전히 지키지 못함으로 죄를 깨닫게 됨을 가르칩니다.

4)예수님의 새 언약은 히브리서 9장에서 말하듯 명백한 상속 언약으로 성경에 정의됩니다.
새 언약이 완성된 이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믿음과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습니다.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성도는 죄성이 내게 살아 움직여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것으로 여기며 자기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연합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와 연합은, 믿음과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연합의 증거이며,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연합은 유효하기에 성도는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됩니다.

5)아담은 완전한 영생의 상태로 지어졌으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도 아니고 양자의 영을 받지도 않았고 하나님 형상의 피조물일 뿐 양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영생을 가진 아담이 하나님께 계명을 받은 후에 유혹에 넘어가 반역할 것을 창세 전에 아셨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존재의 격상 과정을 겪어야 할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불완전한 영생의 상태로 창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브리엘이나 미카엘 천사가 불완전한 영생의 상태로 창조되었다거나 또는 지금도 불완전한 영생의 상태라면 말이 맞겠습니까. 아담도 그러합니다.

6)화목제물로 죄의 값이 치러져 율법의 요구(율법의 의)가 성취되었다는 로마서 8장의 선언은 믿음 안에서 속죄로 인해 율법의 의가 전가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 있는 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의가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아"다르고 "어"다릅니다. 율법을 준수해서 전가한 것과 율법의 요구가 지불된 것이 전가된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유업의 상속자가 되고 양자가 된 것은 의의 전가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9장의 설명처럼 모세의 율법과 새 언약이 첫 상속 언약과 새 상속 언약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두 언약 역시 성경 전체의 모든 세계에 적용되는 한 법에 종속되어 있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그 한 법과 율법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마치 헌법과 하위에 있는 형법이 같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본질상 같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갈2:19~21 ;엡2:5)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됨으로, 성도라면 이스라엘 민족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의(갈3:28~29) 성도들은 양자 됨과 유업의 약속을 받았다. )

7)그래서 행위언약은 교정이 필요합니다.

8)행위언약과 더불어 회심준비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점은,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하나님 백성 된 자들이었기에 죄인은 지키지 못하고 죄를 깨닫게 하는(초등교사 역할을 하는) 첫 상속 언약을 받았고, 우리는 곧바로 믿음으로 새 상속 언약을 통해 구원을 얻었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첫 상속 언약은 받은 적도 없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15장 말씀이 증거 하듯이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 되기 전에도 모세의 율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누구에게나 곧바로 새 상속 언약이 완성된 굿 뉴스,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그래서 구원 전에 초등교사 역할 필요는 우리에게 적용 불가능하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의 제 3용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부각 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기능"인 것입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뜻이 매우 자세하고도 규모 있게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바로 성경말씀의 일부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첫 상속 언약을 맡은 유대인이 아닌 우리는 구원을 받기 전엔 하나님 백성도 유업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특별계시인 모세의 율법과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본성과 양심을 구분 못하면 안 됩니다.
(모든 민족 누구든지 믿음으로 새 상속 언약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는 로마서 5장의 선포처럼 성도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 그리고 로마서 7장의 사도바울의 탄식도 "이미 중생한" 성도에게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 때문이지 율법의 초등교사역할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5장의 선포처럼 구원받아, 보혜사 성령님을 따르는 성도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율법의 완성”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리고 언약에 관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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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후에 이미 복음을 계시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여자의 씨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여자의 씨는 훗날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씨이고 이 아브라함의 씨가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심을 성경이 증거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 된 복음인 여자의 씨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체결하신 원-사이드 계약 내용의 당사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대속하심으로 비로소 계약 내용대로 성취되고 있는 원-사이드 언약 + 두 번의 언약이 가지고 있는 조건 중 일방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번의 언약이 가지고 있는 조건입니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당시 유일한 하나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맡겨주신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 백성에게 약정하여 주신 첫 언약이지만, 행위를 조건으로 하며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며 죄인은 지킬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초등교사 역할을 하게 될 언약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하시고 보내주신" 성육신하신 성자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새 언약은 하나님 뜻대로 일방적으로 완성하셨는데, 믿음을 조건으로 온 인류 중 누구나 믿고 영접하는 이는 하나님 백성과 그리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은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믿는 자, 즉 남은 자만(롬9:27) 구원을 받고 유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때까지 그러하다.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약정백성과 하나님도 없던 자들(엡2:11~12) 이 둘을(새번역성경,현대인의성경 엡2:14) 하나로 만드셨다. 이방인 중 누가 믿고 구원받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유대인 중 누가 믿고, 남은 자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엡2: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종교개혁 초기의 문제인데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고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율법 문제는, 율법을 어떤 위치에 두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증거는, 믿음으로 새 언약을 통해 구원받은 이방인들은 구원받기 전에 모세의 율법을 받은 적도 없고(구원받은 이후에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음도 성경이 선포, 갈3:29) 율법의 의무에서 자유하다는 사실을 공표함입니다.
율법도 없던 자들에게 회심을 위해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회심준비론은 적용도 할 수 없는 넌센스인데, 종교개혁기 신학자들에게 버젓이 오르내리게 된 이유가 율법을 어떤 위치에 놓는가 하는 "율법의 자리 찾기"에 있다고 봅니다.
율법도 없다가 성도가 된 우리에게 율법은 하나님 백성으로 올바르게 살 수 있는 하나님 뜻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 뜻이 담겨있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뜻을 알 수 있는 율법의 제3 용도로도 충분할 터인데, 지나쳐서 율법을 맡은 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율법주의도 율법폐기론도 모두 잘못된 것들인데 특히, 사실상 율법주의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현대판 이방인 바리새주의는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작성일:2019-10-10 14:02:59 27.119.20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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